정의윤이 5월 26일 SK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LG 트윈스
―사전 정보에 의하면 정의윤 선수가 가장 듣기 싫어 하는 말이 ‘잘생겼다’ ‘에릭 닮았다’는 말과 ‘만년 유망주’라고 들었다. 이유가 궁금하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절대로 잘생기지 않았다(웃음). LG에는 ‘미남과’의 선수가 ‘수두룩빽빽’하다. 난 그 수준에 끼지도 못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절로 민망해진다. 그리고 유망주라는 단어를 맨 처음 들었을 때는 상당히 기분 좋았다. 그러나 그 수식어를 상무 제대 후에도 들어야 했을 때는 참담했다. 더욱이 ‘만년’이라는 단어까지 붙었다. 할 말이 없었다.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랬던 ‘만년 유망주’가 요즘 빵빵 터지고 있다. 4월에는 1할대 빈타로 허덕이다가 5월 들어 3할대가 넘는 성적을 보였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나.
“김무관 코치님의 조언으로 타격폼과 스탠스를 바꿨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폼이 지금은 상당히 자연스러워졌고, 그게 성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칭찬과 관심을 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기태 감독님 말씀대로 타격 5위 안에는 들어야 4번타자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한 달 바짝 잘한 것 같고 상승세 운운하기에는 이르다.”
―LG의 두터운 외야수 벽들(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대형)로 인해 그동안 선발 출전 기회가 적었는데 아쉬움이 있을 것 같다.
“분명 있다. 우리 팀의 외야수는 국가대표급들이다. 형들이 몸이 안 좋거나 부상일 때 출전 기회가 생긴다. 그 외에는 주로 왼손 투수가 나올 때, 아니면 대타로 타석에 서게 되는데 출전 횟수가 많지 않다보니 짧은 시간 동안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자꾸 서두르게 된다. 주전일 경우에는 처음 못 쳐도 다음 세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대타로 나가서는 몸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힘들다. 오늘 4타수 무안타를 쳤을 때, 주전은 ‘내일 만회하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비주전은 ‘내일 다시 나갈 수 있을까’하며 절망한다. 백업 멤버들은 하루살이 인생이라 4타수 무안타를 칠 경우 ‘내일’이 없다. 지금의 성적은 주전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들이다. 비주전이었다면 이런 성적을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은숙 기자.
“다른 건 없다. 상무 때는 주전으로 활약했고, 경기 때마다 출전이 보장됐기 때문에 신나게 운동했던 것 같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삼진을 먹고 수비하다 ‘알’을 까도 ‘내일’을 떠올리며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을 하다 다시 LG에 복귀했을 때는 1군과 퓨처스리그의 차이를 실감하며 잠시 절망을 곱씹기도 했었다.”
―넥센 박병호와 입단 동기였다. 박병호가 LG를 떠나 지난해 넥센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이 만만치 않았겠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기에 (박)병호가 저렇게 펄펄 날 수 있는지가. 그래서 당시에는 병호한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왜 잘하게 된 건지, 뭐가 달라졌는지, 새로운 훈련법이 있는 건지…, 생각나는 대로 물어봤다. 그때마다 병호는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넥센에서는 삼진 먹고 들어와도 박수를 쳐준다고, 선수를 신뢰하는 더그아웃 분위기로 인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야구는 테크닉보다 심적인 부분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 SK전에서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 된 후 ‘물 세리머니’ 사건으로 그 여운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물 세리머니로 인해 한동안 시끌벅적했는데….
“내가 좀 더 앞에 나가서 그 물을 다 맞았어야 하는데, 그랬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건데, 내가 그러지 못한 바람에 여자 아나운서 분이 물벼락을 맞게 되었다. 솔직히 (임)찬규가 무슨 죄가 있겠나. 그 세리머니를 제대로 못 맞춰준 내가 문제이지. 그 일로 인해 찬규가 상당히 힘들어했다. 다행이 잘 마무리됐지만, 야구인생에서 잊지 못할 끝내기 세리머니일 것 같다.”
―올 시즌 LG의 ‘가을야구’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지금의 상승세라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을 비롯해 선수단 전원이 똘똘 뭉쳐있다. 모두가 ‘이번에는 한 번 해보자’하는 집념이 대단하다. 내가 입단 9년째인데 8년 동안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했다. 9년 되는 해에 생애 첫 가을야구를 경험하고 싶고, 플레이오프는 물론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가장 멋진 한 시즌을 만들고 싶다. 그때까지 내가 4번타자를 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LG가 플레이오프에만 진출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이신전심’ 선후배
LG 4번타자 정의윤은 메이저리그 추신수의 부산고 후배다. 정의윤이 부산고 재학 중에는 추신수와 함께 3년간 동계훈련을 했다고 한다. 시즌 마치고 귀국할 때마다 모교에서 훈련을 했던 추신수가 돌아가신 부산고 조성옥 감독이 이끄는 야구부에 들어가 동계훈련에 참여했던 것이다.
당시 정의윤에 눈에 비친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절치부심 중인 추신수가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윤 입장에서는 메이저리그를 향해 뛰어가는 추신수가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추신수는 정의윤을 기억하고 있을까? 추신수는 직접 얘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롯데 정인교 코치의 아들 정의윤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외삼촌인 박정태를 통해 정인교 코치를 소개받았고, 그의 아들이 정의윤이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 추신수는 “요즘 정의윤이 LG에서 4번타자로 맹활약 중이라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봤다”면서 “부산고 후배이다보니 관심있게 챙겨보게 된다”는 얘기로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