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신 현대 하나대투 등을 포함한 주요 증권사들은 언론매체에 CMA 광고를 연신 쏟아내고 있다. 6월에 CMA와 신용카드 기능이 결합된 상품을 내놓은 데 이어 7월부터는 지급결제 서비스까지 시행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CMA는 기존의 월급 통장에 없는 고금리를 제공해 왔으나 정작 은행 통장처럼 전반적인 금융서비스를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이후 금융시장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증권사도 은행과 큰 차이가 없는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CMA 1차 대전’은 증권사들의 압승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2004년 첫 상품이 나온 이래 2006년 7월까지의 CMA 수탁액은 3조 원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하루만 예치해도 연리 5%가 넘는 이자를 준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2007년부터 CMA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여기에 펀드와 증권 열풍이 가세하면서 증권사로 고객들이 이동, CMA 자금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2007년 말에는 CMA 수탁액이 27조 원으로 늘어났다. 18개월 만에 9배로 뛴 것이다. 현재 증권업계 CMA 수탁액은 38조 원가량이다.
증권사들이 지난 6월부터 CMA 신용카드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시작된 ‘CMA 2차 대전’은 현재까지는 무승부라 할 수 있다. CMA 1차 대전에서 크게 데인 은행권이 지난 5월 말부터 CMA 신용카드 상품에 시비를 걸면서 금융당국과 증권업계를 압박한 결과다. 은행업계에서는 전체 증권사 CMA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형 CMA의 경우 지급준비금 규정이 없고 편입 자산의 만기가 짧아 자칫 금융시장이 경색됐을 때 결제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CMA 신용카드 출시로 CMA로 자금이 이동됨에 따라 자금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금융당국에 증권사들의 과대광고, 불법판매에 대해 적극 건의를 해왔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의 CMA 신용카드 발행과 관련, 무자격자에 의한 고객모집 등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 필요하면 미스터리쇼핑(판매현장 암행감시)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CMA 신용카드 출시가 한 달이 지났지만 CMA 수탁액의 변동은 미미한 상태다. CMA 신용카드 전쟁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은행업계와 증권업계가 신용카드에 이어 소액지급결제 서비스 부문에서 다시 한 번 맞붙게 됐다. 본격적인 ‘CMA 3차 대전’의 시작이다. 소액지급결제 서비스는 은행 통장과 똑같은 기능을 갖추고 있어 이에 은행권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소액지급결제란 지금까지 은행에서 일반적으로 해 왔던 현금 이외의 지급 수단 제공을 의미한다. 어음이나 수표의 결제, 지로나 공과금 자동이체,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한 송금 등이 모두 소액지급결제에 해당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이전에도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내걸고 여러 금융 상품들을 판매해 왔지만 자동이체를 통한 급여 수령이나 인터넷 뱅킹 이용이 일상화된 일반인들 입장에서 증권 계좌는 증권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사실상 장점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 2월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증권사들도 소액결제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증권 계좌만으로도 급여를 받거나 자동이체를 할 수 있게 됐다. 은행 입장에서는 증권사가 휘두를 ‘고금리 검’을 막아낼 ‘방패’ 중 하나를 잃은 셈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사실 CMA 수탁액 38조 원의 절대 금액 자체는 크지 않다. 또한 증권사 CMA의 고객은 20∼30대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평균 수탁액도 300만 원에 불과하고 이는 직장인들의 월급통장이 대부분이다. 이들 고객들은 고금리와 함께 증권·펀드의 다양한 서비스 때문에 은행권에서 넘어온 고객이다. 은행권의 주요 고객인 법인, 기관과 같은 200조 원이 넘는 예탁자산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미래 잠재 고객들인 20~30대가 금융서비스를 증권사로 돌렸다는 점은 은행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펀드 등 간접상품시장의 주도권을 증권사에 뺏길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증권사들의 CMA 상품이 인기를 끌 경우 고객은 물론 대출 기능을 통한 그동안의 기득권까지 상당 수준 위협당할 수 있다는 은행권의 초조함이 배어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은행권은 저금리하에서 예금 자산의 이자율을 거의 주지 않았다. 일명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영업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식형 펀드 열풍으로 CMA 자금이 급증했던 2007년 ‘머니 무브’(Money Move·자금이동)를 기억하고 있는 은행들은 CMA 못지않은 고금리를 부여하면서 고객 이탈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통상 급여 계좌와 같은 수시 입출금식 계좌는 금리가 ‘제로’(0)에 가까웠지만, 고금리가 가능한 역발상의 새로운 상품을 제공하면서 CMA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일정 조건을 부여해 연 4%대의 비교적 높은 금리를 부여하거나 금융거래 수수료를 면제하는 것이고, 일정 금액 이상을 예치하면 별도의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도 내놓았다. 은행권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고금리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수수료 면제와 대출금리 우대 같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단순히 금리만을 내세운 증권사 CMA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CMA로 갈아타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경우에는 우대금리 적용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CMA 3차 대전 공세에 나선 증권사들은 은행권의 견제 외에도 넘어야 할 산이 더 생겼다. 대표적인 고금리 상품인 CMA의 최근 금리가 낮아진 것이다. 한때 5%대를 넘봤던 CMA 금리가 최근 연평균 2.5% 수준까지 떨어졌다. 증권사들이 CMA 관련 역마진을 우려할 단계로 최근 채권금리 상승으로 보유했던 채권의 손실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과의 금리 차이가 부각되지 않으면 은행의 기존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워진다. 금리가 4% 이상 유지되지 않을 경우 차별화된 서비스나 재테크의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너도나도 CMA 상품을 내놓으면서 증권업체 간의 마케팅 경쟁, ‘내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지급 결제 서비스 시행일부터 증권업계가 내분에 휩싸인 것이다. 대다수 증권사들이 소액 결제 서비스 제공 시점을 7월 말로 설정했지만 동양종합금융증권이 지난 3일부터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증권사 간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