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신원 SKC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왼쪽부터) 간의 분가설이 현실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 ||
SK케미칼은 그동안 보유해 온 SK건설 주식 1177만 6718주 중 811만 8000주를 SK그룹 지주사인 SK㈜에 매각한다고 지난 6월 26일 공시했다. 매매가격은 4140억 원이며 주식 처분 예정일자는 7월 31일. 이로써 SK케미칼의 SK건설 지분율은 종전의 49.49%에서 15.38%로 낮아지게 된 반면 그룹 지주사 SK㈜는 지분율 34.11%를 확보, SK케미칼을 제치고 최대주주 등극을 앞두게 됐다. 이번 거래 목적에 대해 SK는 ‘지주회사의 포트폴리오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 SK케미칼은 ‘재무구조개선 및 기업가치 제고’로 각각 공시했다.
SK그룹은 ‘조심스런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이 거래를 SK그룹 사촌형제들 간 계열분리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 최대주주(지분율 10.18%)로서 이미 독립에 필요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SK케미칼 계열은 지난 2007년 발표된 SK그룹 지주회사 전환계획에도 포함되지 않아 독자 소그룹화 수순 밟기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태원 회장도 자신이 보유해온 SK케미칼 계열 주식을 대부분 처분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들이 이번 거래를 분가 신호탄으로 보는 이유는 동생 최창원 부회장과는 대조적으로 SKC 지분율이 3.21%에 불과해 42.50% 지분을 보유한 SK㈜로부터 독립이 어려워 보였던 형 최신원 회장의 분가 전망을 한층 밝게 했기 때문이다. 재계와 증권가에선 SK케미칼의 주식 매각대금이 최신원 회장을 SK그룹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해줄 종자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IG투자증권은 지난 6월 29일 SK 분석보고서(조승연 애널리스트)에서 ‘2008년 말 수원공장 부지 매각으로 4152억 원, 이번 SK건설 지분 매각으로 4140억 원 등 총 8292억 원의 재원을 확보하게 된 SK케미칼이 SK㈜로부터 SKC 지분을 매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SK케미칼의 SKC 지분 확보를 통한 SK케미칼-SKC의 동반 분가 행보를 예견한 것이다.
SK건설 경영권은 SK케미칼에 꽤나 중요한 자산이다. 지난해 SK건설은 매출 4조 773억 원에 영업이익 2140억 원, 당기순이익 1145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 1조 864억 원, 영업이익 744억 원, 당기순이익 65억 원을 기록한 모회사 SK케미칼보다 크게 앞서는 실적이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런 알짜 회사의 최대주주 자리를 최태원 회장의 SK㈜에 순순히 넘긴 배경엔 독립 여건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최신원 회장에 대한 고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SK케미칼이 부동산과 주식 매각으로 벌어들인 8292억 원은 SK㈜가 보유한 SKC 주식은 물론 SKC의 발행주식 전체를 사들일 수도 있는 거액이다(7월 2일 SKC 종가 2만 1700원 기준). 이렇다 보니 SK증권까지 계열분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이는 최신원 회장의 최근 SK증권 지분율 증가 속도와 맞물린 관측이기도 하다. SKC 지분율 늘리기에도 바빴을 최신원 회장은 지난 2월 5일 SK증권 주식 1만 주 매입을 시작으로 7월 2일 현재 25만 주까지 보유량을 늘려왔다. 최신원 회장의 SK증권 지분율은 0.08%에 불과하지만 최태원 회장 친동생 최재원 SK E&S 부회장(0.03%)을 앞질러 개인 최대주주에 올랐다는 상징성에 시선이 쏠린다.
최신원 회장의 SK증권 지분율 증가는 SKC가 SK증권 지분 7.73%를 보유해 왔다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다. 거액 실탄을 확보한 SK케미칼이 SKC 경영권 획득에 필요한 지분을 인수하고 남는 돈으로 SK증권 지분을 사들인다면 SK케미칼-SKC-SK증권을 묶는 소그룹군 형성도 가능해진다.
최창원 부회장이 순순히 알짜 회사 SK건설 지분을 최태원 회장 측에 내놓은 점이나 최신원 회장의 SK증권 지분율 확대가 잡음 없이 이뤄지는 점에서 재계 일각에선 모종의 ‘협의’에 따라 계열분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SKC 자회사인 SK텔레시스가 최근 이동전화 단말기 제조업에 진출, SK텔레콤과의 지속적인 연계를 통한 IT산업 육성에 나선 점도 그렇다. 최신원 회장이 올 초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분가와 관련해 에둘러 “각자의 사업영역에서 책임경영을 구축해 가고 있다”면서 “조만간 ‘협의’가 끝날 것”이라고 밝힌 부분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물론 최태원 회장 의중에 따라 계열분리 기상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SK케미칼이 자산 매각 등으로 투자 재원을 확보했지만 최태원 회장이 분가를 원치 않을 경우 SKC 지분 42.50%를 지닌 SK㈜가 주식을 내놓지 않으면 그만이다. 올 초 최태원 회장이 보유 중이던 SK㈜ 주식 대부분을 매각해 1000억 원에 이르는 매각대금을 챙기자 “SK증권 지분을 사들일 것”이란 관측이 따라붙었지만 최 회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반 지주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예상대로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될 SK그룹의 SK증권 소유에 문제가 없는 까닭에서였다.
SK그룹은 지난 6월로 지주회사 전환작업 기간 2년이 만료됐지만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년 유예기간 연장을 얻어내 순환출자구조 개선 등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당분간 급할 것 없어 보이는 최태원 회장과 잰걸음을 보여 온 최신원-창원 형제가 계열분리와 관련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지, 아니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에 대한 재계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