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계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잘나가던 모피아 출신이 한물가고 EPB 시대가 찾아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는 역대 경제부처 수장들을 보면 잘 드러난다.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부처 수장 중 모피아 출신은 이규성, 이헌재 부총리 두 명, EPB 출신은 강봉균, 진념, 전윤철 부총리 세 명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모피아 출신이 김진표, 이헌재 부총리 두 명, EPB 출신은 한덕수, 권오규 부총리 두 명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모피아와 EPB가 균형을 맞춘 셈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장을 지낸 강만수, 윤증현, 박재완 장관은 모두 모피아 출신이었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외환위기를 불러왔던 모피아 출신이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EPB 출신이 대거 약진했다. 5년 만에 부활한 경제부총리에는 현오석 전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발탁됐고, 청와대 경제수석에는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이 임명됐다. 경제정책 양대 축에 모두 EPB 출신이 앉은 것이다. 청와대에는 조원동 수석뿐 아니라 EPB 출신인 주형환 경제금융비서관과 홍남기 기획비서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정부 부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에서 힘이 가장 많이 실리고 있는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된 이도 EPB 출신인 노대래 전 방위사업청장이었다.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는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임명됐다.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주요 포스트를 EPB 출신이 장악한 것이다. ‘모피아의 시대는 갔다’는 평가가 힘을 받은 이유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출범 4개월 정도 지난 현재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모피아 출신들이 금융업계 수장 자리를 하나둘 차지하더니 어느 순간 ‘대세’가 돼 버린 것이다. 일부는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이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 덕에 다른 이들에 비해 사퇴 압력을 받고 있지는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 선임됐던 금융지주 회장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모피아 출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물러나자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이 회장으로 내정됐다. 임영록 KB회장 내정자는 행정고시 20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에서 경제협력국장과 금융정책국장을 거쳐 2차관을 지냈다.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 내정자도 마찬가지다. 행시 24회 출신인 그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1차관과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5대 금융지주 중 2곳을 모피아 출신이 꿰찬 셈이다.
금융 관련 공공기관에도 모피아 출신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사장에는 행시 25회에 재무부 금융정책실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진 김주현 금융위 사무처장이 임명됐다.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은 행시 15회 출신에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장영철 자산관리공사 사장 역시 행시 24회로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으로 일했다.
행시 23회 출신인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은 기획재정부 국고국장과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 사무총장을 지냈다. 문재우 손해보험협회장(행시 19회, 재정부 경협총괄과장),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행시 24회,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행시 9회, 재정경제원 1차관보),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행시 16회, 재정경제부 본부국장) 등도 모피아 출신. 최근에 임명된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역시 행시 26회로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장을 지냈다.
이처럼 모피아가 휩쓸고 있는 금융관련 공공기관에서 EPB 출신은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정도가 손에 꼽힌다. 행시 17회 출신인 그는 재정경제부 1차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쳤다.
이처럼 금융업계를 모피아 출신들이 장악하자 경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1일 “모피아 낙하산은 결국 금융의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제대로 된 금융 감독을 방해해 제2의 금융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정희수 의원도 13일 대정부질문에서 “모피아 위주의 금융권 인사로는 금융 개혁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모피아들은 EPB에 비해서 재무에 밝아서 금융관련 업무에 강한 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과거 모피아 특유의 끼리끼리 문화가 결국 1997년 외환위기를 불러왔던 전력이 있는 데다 관치금융 논란을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겸 언론인
“재정부 아닌 기재부라 불러달라”
이름에서 드러나듯 EPB의 전성기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정부가 경제를 이끌던 1960∼1980년대다. EPB는 기획에다 예산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모피아는 이에 맞서 금융과 세제를 활용해왔다. 모피아가 본격적으로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정부 주도형 경제 발전 정책이 벽에 부닥치면서부터다. 그런 모피아도 1997년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리며 영화를 잃었다.
모피아와 EPB 간 경쟁이 붙을 때 모피아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다른 부처에 비해 끈끈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헌재, 강만수, 윤증현 등 모피아 출신 수장들이 보여준 강력한 리더십이 이러한 모피아 생리를 잘 드러낸다. 이런 탓인지 기획재정부에는 지금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수장을 원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
모피아와 EPB 간 경쟁은 부처 약칭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미묘하게 드러났다. 모피아 출신들이 장관을 지냈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기획재정부의 약칭을 재정부로 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EPB 출신인 현오석 부총리가 오고난 뒤 기획재정부에서는 각 언론사에 기획재정부의 약칭을 기재부로 써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