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한·중 동시 개봉하는 김용화 감독의 기대작 <미스터 고>의 한 장면.
최근 중국에서는 눈에 띄는 흥행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 중국의 신예 스타 바이바이허와 펑위옌이 주연을 맡은 멜로영화 <이별계약>이다. 4월 12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상영 이틀 만에 제작비 3000만 위안(한화 약 54억 원) 전부를 회수했고, 지금까지 총 1억 9000위안(약 384억 원)을 벌어들였다. 역대 중국 로맨스 장르의 영화로 흥행 8위의 기록. 한·중 합작 영화로는 최고 흥행이다.
<이별계약>의 흥행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한·중 합작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연출은 오기환 감독이 맡았다. 이영애 이정재 주연의 <선물>, 손예진 송일국의 <작업의 정석> 등을 만든 오 감독은 감성 멜로 장르에서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아왔고 그 실력을 중국 영화에서도 펼치면서 관객과의 소통까지 이뤄냈다. <이별계약>에는 오기환 감독뿐 아니라 다수의 한국 영화 스태프들이 참여했다. <해운대>의 김영호 촬영감독, <황해>의 황순욱 조명감독, <도둑들>의 신민경 편집감독, <건축학개론>의 이지수 음악감독이 모였고 흥행에도 성공해 주목받고 있다.
<이별계약>은 출발부터 중국시장을 겨냥한 작품이다. 아이디어와 기획은 한국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맡았다. 감성적인 한국형 멜로 장르로 중국 시장을 공략하자는 데 뜻이 모였고, 그 장르에서 탁월한 감각을 갖춘 전문가들을 모았다. 물론 제작비도 댔다.
<이별계약>은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영화 인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동안 감독과 배우들이 중국 영화에 참여하거나 제작비 일부를 투자하는 소극적인 합작에서 벗어나 중국 시장 전체로 나갈 수 있는 활로를 찾았다는 데 의미를 두는 의견이 많다. 여기에 중국 내 최대 규모의 국영배급사인 차이나필름그룹이 배급을 맡은 점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자국 영화를 보호하는 ‘쿼터제’가 존재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새로운 모델을 찾은 셈. 앞으로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은 <이별계약>이 ‘롤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CJ엔터테인먼트부터 또 다른 아이디어를 찾으며 중국으로의 적극적인 진출 기회를 찾고 있다.
한국 감독들의 중국 영화 진출은 6~7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엽기적인 그녀>를 만든 곽재용 감독 등이 1세대로 꼽힌다. 그러다가 진출에 가속이 붙은 건 2~3년 전부터다. 허진호 감독은 2009년 정우성 주연의 <호우시절>로 한·중 합작 영화를 경험한 뒤 지난해에는 장동건과 중국 톱스타 장쯔이, 장바이즈를 캐스팅해 <위험한 관계>를 선보였다. 감독과 주연 배우, 일부 스태프만 한국 인력으로 구성됐을 뿐, 제작비와 촬영지 등은 모두 중국에서 지원한 방식이었다.
지난 4월 개봉해 대륙을 사로잡은 <이별계약>(왼쪽)과 지난해 선보인 장동건 주연의 <위험한 관계> 스틸사진.
실제로 지난해 7월 중국에서 개봉한 안병기 감독의 <필선>은 첫 주에 3000만 위안의 수익을 거뒀다. 총액은 6400만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12억 원으로 중국 공포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올해 들어서는 더욱 활발하고 적극적인 중국 진출이 이뤄지고 있다. 7월 17일 개봉하는 김용화 감독의 3D영화 <미스터 고>가 대표적이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탄생하는 입체 캐릭터인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의 총 제작비는 225억 원이다. 이 가운데 56억 원을 중국 배급사인 화이브러더스가 맡았다. 할리우드에서도 공동제작을 원하는 대형 스튜디오이자 중화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배급력을 확보한 회사다. <미스터 고>는 화이브러더스의 참여로 인해 중국에서도 동시 개봉한다. 첫 주에 확보한 스크린 수만 5000여 개.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한국 영화의 중국 개봉으로는 최대 규모로 중국에서의 흥행을 예상하는 의견이 많다.
김용화 감독은 2006년에 만든 <미녀는 괴로워>(600만 명)와 2009년 <국가대표>(800만 명)로 연속 흥행을 이뤘다. 할리우드에서도 꾸준히 연출 제의를 받아왔지만 해외 시장에 대한 여러 방안을 모색해오다 중국을 첫 번째 진출 무대로 택했다. 최근 열린 <미스터고> 제작보고회에서 만난 김용화 감독은 “고민 끝에 중국시장에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며 “‘미스터고’ 시나리오가 완성된 뒤 관심을 보인 중국의 회사들이 많았지만 기획할 때부터 의견을 나눴던 화이브러더스를 선택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중국 영화시장의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해 중국의 개봉 영화 관객 수익은 약 27억 달러, 한화로 계산할 때 3조 269억 원이다. 최고 호황이라고 떠들썩했던 지난해 한국영화 총 수입은 1조 4551억 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현재 중국은 자국의 자본과 기술로 완성하는 영화 비율이 전체 50%를 넘지 못한다. 결국 한국 영화의 아이디어와 인력이 진입할 수 있는 ‘넓은 시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런 긍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중국영화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한국영화를 빠르게 잠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영화 인력의 유출과 중국 자본의 한국 영화 유입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결국 한국 작품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 있다”며 “적정한 선에서 두 영화 시장이 함께 성장하는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