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13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김무성
“아직은 때가 아니다.”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측이 자주 하는 말이다. 김 의원은 최근 실시된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1위를 차지하며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당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꾸준하다. 하지만 그런 김 의원조차도 향후 국정원 문제와 관련해 시련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상도동계 막내로 출발해 친박계 좌장까지 성장한 김 의원은 누구나 좋아하는 성격을 지녔지만 한 꺼풀 벗기면 당내 지지기반이 공고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며 “국정원 건과 관련해서도 지난 대선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만큼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김 의원은 세종시 문제에 관해 박 대통령과 다른 스탠스를 취하거나 총선을 앞두고 백의종군하는 등 고비마다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국정원 사건에 대해서도 보다 전향적인 입장 표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권영세
지난 대선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권영세 주 중국 대사 역시 국정원 의혹 중심에 놓였다. 지난 18일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국정원 사건의 배후이자 몸통으로 그를 지목한 것이다. 대통령 방중 준비에 집중해야 할 권 대사로서는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니다. 권 대사는 “정치권에서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의혹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권 대사가 주중대사로 간 것을 두고 색다른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앞서의 새누리당 당직자는 “대선 때 새누리당에서 가장 헌신한 이를 꼽자면 이정현 홍보수석과 권영세 대사였다. 두 사람 모두 청와대행이 예상됐는데 끝내 권 대사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그의 중국행이 ‘좌천’이라는 시각이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권 대사는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 후보로도 거론되지 않았나. 국정원 출신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면 정권 내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서상기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칼을 빼 들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 의원은 3개월간 정보위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야당의 속을 태웠다. 하지만 지난 19일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서 위원장이 국외 출장을 떠나는 나에게 돈 봉투를 건넸다”는 폭로 이후 초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다음날인 20일 서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에 있는 공식자료를 검토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NLL 포기 발언 확인에 대해 서 의원 측은 “검찰 발표가 있기도 전에 정보위를 열면 정치공세의 장이 될 것이 빤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선을 지켜온 것”이라며 “먼저 선을 넘은 것은 민주당이다. 근거도 없는 일을 끌어다가 공세를 펼치니 우리도 나름대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서 의원의 역공은 정보위 회의를 통해 계속될 전망이다.
왼쪽부터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서상기 의원, 홍준표 경남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하루하루는 버겁다.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를 강행하면서 야권은 물론 정부와도 연일 마찰을 빚고 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이번 국정원 사태와 관련해 홍 지사는 “댓글 3개로 110만 표를 움직였다면 참 대단한 국정원”이라며 “국정원이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대선불복종 정치투쟁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여권에 힘을 보탰다. 이명박 정부 초반 “국정원 뭐 하는 집단이냐”고 불호령을 내렸던 것과 사뭇 달라진 태도다.
하지만 갑작스런 의견 개진에 따른 반응은 냉랭하다. “검사 출신인 홍 지사가 ‘댓글 3개, 대선불복종’ 등 특정 키워드에만 반응하는 것이 격세지감”, “BBK 방어하던 야당 기질을 못 벗었다”는 것. 반면 “정몽준 의원처럼 원론적인 수준을 말할 바에야 홍 지사처럼 시원하게 지르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내다본 이도 있다.
# 문재인
국정원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한동안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국정원 대선개입 파문이 박근혜 정부 정통성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문 의원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 그가 입을 연 것은 지난 14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고 나서였다. 의혹이 제기된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동안 사건의 핵심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검찰 소환조사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문 의원이 입을 열자 일각에서는 너무 늦은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의원은 지난 16일 기자들과 함께한 산행에서도 국정원 관련 현안을 언급했다. 문 의원은 “국정원 부분은 솔직히 조금 분노가 치민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와서 박 대통령에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국정원과 검찰을 바로 서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타이밍’에 대한 지적 탓일까. 문 의원은 지난 21일 노무현 전 대통 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해 대화록 전문 공개라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던졌다. 여권의 국정원 사건 물타기에 대한 정면돌파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 박영선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파문과 관련, 새누리당의 ‘몸통과 배후’를 지목하며 연일 맹공에 나섰다. 박 의원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해 12월 11일 밤 역삼동에서 ‘국정원 댓글녀’ 사건이 벌어진 같은 시간에 새누리당 선거캠프에선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주재로 대책회의가 열렸다”며 “이 회의에 참석한 멤버들과 권영세 실장이 통화한 내역들이 (국정원 사건의) 몸통”이라고 말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배후가 있다고 전격 주장한 것도 박 의원이다. 하지만 “배후가 누군지 밝히지는 않겠다”며 회심의 카드를 꼭꼭 숨겨두고 있다. 박 의원은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확인’ 주장에 대해 “국면전환용 카드”라고 비난했지만 새누리당은 오히려 “NLL 발언의 재논란과 발췌문 열람은 박 의원이 ‘NLL 포기 논란이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너무 나서다가 역공의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 김한길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1일 ‘국정원 국기문란 국정조사 촉구 결의대회’에서 “국가권력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민 분노가 여의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NLL 대화록이 아니라 세상 어느 것을 가져와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막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강력한 국정조사 의지가 표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대표는 지난 18일 황우여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국정원 등 국가권력기관의 대선개입과 관련한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여야가 합의했던 대로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집권초기 여야 협력관계인 허니문에 대한 마감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며 돌직구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최근의 초강공 분위기와는 달리 초반에는 ‘을’을 위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우선시해 일각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야당의 한 당직자는 “을을 위한 민생법안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국정원 사건은 국가 근간을 흔든 국기문란사건이다. 항상 뒤로 밀리는 ‘국정원 사건’ 현안 때문에 그동안 의아함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박영선 의원, 김한길 대표, 김부겸 전 의원, 진선미 의원.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폭로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되자 김 전 의원은 새누리당으로부터 ‘역공작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전직 국정원 간부 김상욱 씨가 지난해 12월 국정원 심리전단의 존재를 파악하고 소속 직원들을 미행할 당시 김 전 의원 보좌관과 수차례 통화, 관련 정보를 넘겨준 사실을 검찰이 밝혀낸 것.
당시 김상욱 씨가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하던 사람으로 알려지면서 새누리당이 민주당 대선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김부겸 전 의원 측이 국정원 내부직원을 매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빌미를 주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본래 계획되어있던 미국 연수를 떠났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향후 국내 정치상황이 급변하면 조기 입국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 진선미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관련 의혹을 연일 폭로하면서 민주당 내 ‘신 저격수’로 떠올랐다. 진 의원은 지난 3월 18일 원세훈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직접 국내정치 개입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 내부 자료를 입수해 폭로했다. 이어 지난 15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국정원 작성(추정) 문건을 공개했다.
진 의원의 이 같은 폭로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진 의원은 그동안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언론계와 학계를 연계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면서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진 의원은 국정원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국정원 개혁 방안을 종합적으로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 안철수
지난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에 대해 새누리당이 네거티브 공세로 규정하며 안철수 당시 후보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때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라며 여야의 네거티브 선거전을 비판했다. 이날은 선거유세에도 나서지 않았다.
원내로 들어온 안 의원의 양비론은 당분간 유지되는 듯 보였다. 안 후보 측이 국정원 선거개입과 관련해 “수사를 담당했던 일선 검찰은 공직선거법을 적용한 구속 기소가 합당하다고 판단했으나 법무부에서 엇박자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보도자료를 낸 것. 당시 이 ‘엇박자’라는 단어 자체가 양쪽의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논란이 일었다. 책임소재가 분명한 사안에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비난의 대상을 흐렸다는 것이 맹점이었다.
그러나 21일 안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와 여야의 ‘NLL 발언록’ 진실공방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국정조사는 이미 여야가 합의했으니 진행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안 의원은 또한 “국가기관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야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