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구속된 김승연 한화 회장(왼쪽)과 최태원 SK 회장. 이들은 2심을 앞두고 로펌을 교체한 바 있다. 내부 법무인력에도 문책성 인사 등 책임을 묻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만 해도 변호사 550여 명, 변리사 450여 명 등 법무 인력이 1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력 규모에선 국내 최대인 법률사무소 김앤장보다 크다. 기업 소송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로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도 이들 사내 변호사들의 영향력이 커진데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물론 사내변호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실제 역할에 비해 아직 기업 내 위상이 걸맞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법률신문>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파악한 국내 50대 기업의 임원 3905명 가운데 변호사는 33명으로 1%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회사 외부에서 경영진을 감시하고 조언과 전문 지식을 제공하는 사외이사 218명 가운데 변호사는 21명(9.6%)이었다. 전체적으로 50대 그룹 임원중에는 54명 정도가 ‘변호사 임원’인 셈이다.
사내변호사를 운영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가장 많은 변호사를 거느리고 있는 삼성은 하나의 로펌을 운영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룹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삼성물산 소속으로 나뉘어 편재돼 있다. 특징은 역시나 ‘전관예우’를 염두에 둔 포석들이다.
삼성전자 소속으로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김상균 사장과 검사 출신인 조준형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조 부사장은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사건 때 변호를 맡은 이후 송사 때마다 변호인단에서 활약했다. 삼성물산에는 판사 출신인 강선명 전무와 검사 출신인 이태관 상무가 경영지원실 법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다.
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은 ‘총수 변호’가 주된 업무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사내 변호사들이 기업 내에서 고유의 업무영역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직장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수준에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 사내변호사들의 운명은 그야말로 총수가 관련된 재판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등 부침이 적지 않다. 현재 총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그룹들은 ‘작지만 강한’ 법무팀을 구성하고 있는데, 최근 대부분 시련의 나날을 맞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4월 홍보실에 이어 법무실에도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계열사 부당지원 등으로 수천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구속된 김승연 회장의 재판과 관련해 그간 법무실장을 맡았던 김태영 전무(전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퇴사했다. 현재 김 회장의 변호인단으로 선임된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의 변호사들 가운데 적임자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노영보 변호사와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 등이 변호인단으로 활동 중이다. 김승연 회장은 당초 1심 재판 때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하지만 지난 4월 2심 선고를 앞두고 변호인단을 태평양으로 교체했다. 1심에서 4년형에다 법정구속된 ‘책임’을 물은 셈이다.
회사 펀드 투자와 관련해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심을 앞두고 변호인단을 교체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한화그룹처럼 김앤장에서 태평양으로 갈아탔다. 이로 인해 사내 법무팀도 좌불안석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당초 최 회장의 변호인단은 구속 당일까지 최 회장의 무죄를 확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룹 내에서는 내로라하는 판·검사 출신들이 재판 분위기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SK그룹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로 최 회장이 구속된 이후 법조인 출신 영입에 힘을 써 왔다. 그룹 전체적으로 법무 전담 인력만 100여 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최 회장의 두 번째 구속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2월 거액의 회사 자산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도 1심에서 징역 4년 6월에 벌금 20억 원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그의 모친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 역시 법정구속됐다. 당시 변호인단은 김앤장이었는데, 태광그룹은 재판이 끝난 뒤 변호인을 법무법인 율촌으로 바꿨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변호인단 교체가 이뤄지면 사내 법무팀도 물갈이 대상이 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행히 아직까지 큰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최근 비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은 최강 변호인단을 꾸렸다. 김앤장과 광장 소속 변호사들이 대거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맞서기 위해 ‘특수통’들이 발탁됐다고 한다. 박상길 전 부산고검장, 기업수사에서 이름을 날렸던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이다.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박용석 변호사,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를 역임한 박철준 변호사 등이 포진해 있다.
이번 여름이 이들 그룹의 법무팀에게는 ‘서늘한’ 여름이 될 게 분명하다. 모두 8~9월 사이 중요한 수사와 공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박웅채 언론인
방패 잇따라 뚫려…“바꿔!”
법률사무소 김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대·최고다. 하지만 최근 그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의 송사에서 번번이 방어에 실패하면서 ‘기업변호 독점’ 현상이 깨졌기 때문이다.
기업 관련 형사사건에서 변호인단을 바꾸는 것은 피고인 측에게도 부담이 된다. 재판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기업 안팎의 속사정을 변호인들에게 전부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SK, 한화, 태광그룹 등이 총수의 재판과정에서 모두 김앤장 측 변호인단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SK그룹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재판 과정이 여하하건 신병문제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결과론적이지만 그 문제에 대응하지 못한 로펌을 그냥 믿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오는 9월로 예상되는 2심에서도 그 문제가 변호인단 성패의 최고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앤장이 다른 로펌들보다 재판 대응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온 것도 독점이 깨진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1위’라는 자신감이 자만으로 이어져, 고객의 요구에 소홀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보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