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 본사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20일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우리카드에 대해 “자생력도 없고 영업이익도 안 난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카드의 배구단 인수 백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이순우 회장의 우리카드를 바라보는 시선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은행에서 분사, 지난 4월 정식 출범한 우리카드는 이팔성 전 회장이 우리은행 노동조합을 비롯해 각계 우려와 반대도 무릅쓰고 추진한 일이었다. 2002년 분사해 1조 5000억 원 손실을 내고 2003년 12월 다시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된 전력이 있는 데다 카드업계 환경이 좋지 않은 탓이었다.
실제로 우리카드는 출범 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건물 입주가 늦어지고 사장 선임부터 인력 배치까지 혼선이 빚어지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범 석 달째를 맞이하면서 비로소 틀을 잡아나가나 싶었지만 회장이 바뀌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당장 우리금융 계열사 CEO(최고경영자)에 대한 물갈이 얘기가 나오면서 정현진 우리카드 사장 역시 사의를 표명했다. 정 사장은 우리카드 출범 이틀 전인 3월 29일에야 사장으로 내정된 탓에 만일 교체된다면 ‘초단기 CEO’로 남을 전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우리카드의 경우 4월에 출범한 것일 뿐 원래 우리은행에 함께 있었다”며 “우리금융 부사장으로서 임기는 오래된 것으로 안다”며 교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또 이순우 회장이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교체할 것을 시사한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배구단 인수 백지화 움직임에다 사장 교체 분위기에도 휘말리고 있는 우리카드 내부 직원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한 직원은 “말단 사원에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전달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로서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길이 없다”며 “회장님 코멘트만 놓고 보면 우울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팔성 전 회장
지난해 말 기준 우리카드 자산은 4조 2000억 원이며 전체 카드시장 점유율은 7.06%로, 7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인 신한카드(20.49%), 2위 KB카드(14.22%), 3위 삼성카드(13.7%)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점유율이다. 수년 내 1위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체크카드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선두권인 농협(22.5%), KB카드(21.2%)에 한참 못 미치는 12.9%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체크카드 시장의 경우 은행이 있는 카드사가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12.9%는 만족할 만한 수치가 아니다.
우리카드 측에 따르면 최근 주력으로 삼고 있는 ‘듀엣플래티늄카드’ 발급 장수가 하루 평균 1만 2000장으로 지난 20일까지 모두 45만 5000장이 발급됐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6월까지 최대 60만 장을 목표로 삼았는데 지금 추세라면 최대 목표치에 근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드시장에서 점유율 1~2%를 올리기도 꽤 힘들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통신시장 못지않게 마케팅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는 것.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우리카드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카드는 우리은행과 함께 일괄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카드만으로는 매력이 없으며 우리은행이 있어야만 우리카드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처지에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순우 회장이 이미 양도·양수계약을 한 배구단 인수마저 재검토하라고 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
그럼에도 비용을 기어이 쓰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는 금융위원회가 기다리고 있다. 당초 카드업계의 과당경쟁을 우려해 우리카드 분사를 허락지 않던 금융위가 돌연 우리카드 분사에 대한 인허가를 의결한 데는 과당경쟁 조짐이 보일 경우 우리카드를 제재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우리카드 스스로 딱히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지주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무리해서 분사한 우리카드가 자칫 우리금융지주의 애물단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정부와 발 맞추기 논란
“최근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발언을 보면 정부와 보조를 너무 잘 맞춘다는 느낌이 든다.“
금융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산은금융, KB금융, 농협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지주의 신임 회장이 대부분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로 채워지면서 ‘관치금융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짙은 가운데 이 회장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정통 은행업계 출신이다. 회장 입후보 당시 이 회장이 내건 자랑거리 중 하나도 ‘행원 출신 회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회장의 행보는 모피아 혹은 관치로 불리는 금융계 인사들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지난 20일 이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뭘 좀 하려고 하면 우리금융 쪽에서 자꾸 이런저런 목소리를 냈다”며 “과거에도 이래서 (민영화가) 안 됐던 것”이라며 민영화 실패 책임을 정부와 금융당국이 아닌 우리금융에 돌렸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라며 “민영화에 대한 질문에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의미의 답변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회장 내정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회장의 행보와 발언은 그 어떤 금융당국 인사 못지않았다. “민영화를 위해서라면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회장 취임 후 단행한 조직과 인사 개편 작업 등은 정부의 입맛에 더 맞는 것 같다는 평가다.
내정 당시부터 이 회장은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독립행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