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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S 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하던 권 아무개 씨는 재테크를 위해 주식투자를 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하지만 ‘한방’ 욕심이 과해 결국 회사 자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고위험 상품인 선물·옵션거래에 손댄 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저축한 돈을 투자하다 그 돈마저 날려버리자 친구들에게 빌리고 은행에서까지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계속 까먹기만 하고 원금 회복을 못하자 권 씨는 자신의 직책을 이용해 회삿돈을 유용하기로 했다. 애초에는 원금을 회복하기만 하면 회사 자금을 되돌려 놓으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권 씨는 한 달에 2억 5000만 원가량의 돈을 빼돌려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실이 늘어날수록 권 씨는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더 위험한 상품에 재투자를 했고 다시 잃는 과정을 반복하며 손실액은 50억 원대로 불어났다. 눈덩이가 따로 없는 셈이었다.
그 액수만큼이나 권 씨의 수법은 대담했다. 그는 2007년 말까지 회사에서 현금으로 지출할 비용을 부풀려서 계산하거나 외환 매수 서류를 조작하는 방법 등으로 자금을 빼돌렸다. 2008년부터는 외환 매입자금 관리를 직접 하면서 매수하지 않은 달러를 매수한 것처럼 가장해 300만∼1900만 원에 이르는 적립 보증금을 매일 인출했다.
권 씨는 외환 매입 등을 위해 보관하고 있던 회사 자금을 자신 명의의 은행 계좌에 바로 입금해 사용했다. 빼돌린 돈은 선물·옵션 계좌로 연동시켜 바로 송금시켰다고 한다. 검찰 조사에서 그는 “손실이 너무 커졌다. 고위험 상품이 한방만 터지면 1억 원으로 20억~30억 원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실수를 만회할 생각으로 계속 손을 댔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권 씨가 치밀하게 소액으로 나누는 방법으로 돈을 빼돌려 2년 동안 범행이 적발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상사가 대학 선배여서 업무를 거의 권 씨에게 믿고 맡긴 부분을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권 씨가 횡령한 57억여 원 가운데 52억 4000만 원은 선물·옵션거래에 투자했고 1억 7000만 원가량은 주식을 하느라 친구들한테 빌린 개인 빚과 은행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했으며, 나머지 9000만여 원은 주식투자 등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는 횡령을 하는 동안 유난히 휴가를 자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엔젤레스, 유럽 등 호화 해외 여행지를 35차례나 다녀올 정도로 씀씀이가 헤펐다. 한 번 여행할 때마다 숙박비 항공권 체류비 등으로 200만~300만 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해 약 1억 5000만 원을 썼다. 게다가 지난 8월에는 2010년형 독일제 승용차를 5400만 원에 사서 몰고 다녔다. 검찰 관계자는 “여행하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던 권 씨가 범행 때문에 불안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말에 앞서 하루 이틀 휴가를 내 자주 해외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치밀한 방법으로 횡령을 하더라도 꼬리가 길면 잡히게 마련. S 사에서는 외환 매입 자금이 서류와 다른 것을 인지하고 내부감사를 벌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결국 권 씨의 범행은 들통이 났다.
한편 단독범행으로 보기에는 권 씨의 횡령액이 많아 한때 검찰 안팎에서는 그룹 차원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권 씨의 계좌를 추적하고 회사 관계자들을 조사한 결과 횡령한 돈 전액을 권 씨가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비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횡령사고 막을 비책
5년마다 뺑뺑이 돌리기
지난 10월 29일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정만)는 법정관리 중이던 회사 자금 약 19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동아건설 재경팀 전 부장 박 아무개 씨를 기소했다. 박 씨는 지난 2004년부터 올 6월까지 회사 운영자금 523억 원, 은행 예치금 477억 원과 은행 신탁자금 898억 원 등 총 1898억 원을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직원 개인으로선 최고액으로 기록될 법한 ‘동아건설 박 부장’ 사건과 이번 ‘S 사 권 과장’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재무팀 등 돈을 직접 만지는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에 의한 횡령 사건이 최근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직원 횡령 사건과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일반 회사의 경우 결재가 다단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부로 올라갈수록 꼼꼼하게 확인을 해 돈을 빼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S 사의 경우 권 씨의 상사가 직무유기를 한 경향이 있다”며 “후배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고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횡령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건설 사건의 경우도 직책을 이용해 후배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특이한 경우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의 횡령을 막기 위해 기업들은 어떠한 방법을 쓰고 있을까. 금융사고가 날 확률이 가장 높은 은행업계에서는 직원을 5년마다 타 지점으로 보내고 있다. 한 지점에 오래 있다 보면 만에 하나 직원들끼리 공모해 돈을 빼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부 직원은 같은 지점에 두지 않아 이들이 공모할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일반 회사의 경우에도 3~5년 정도 일한 재무팀 직원을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시키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고. 게다가 직원이 결재서류를 올리면 과장 부장 상무 등 윗선으로 올라가면서 의문이 나는 지출 부분에서는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한다.
감사팀과 회계팀을 이용해 수시로 정확하게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체크한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시스템상으로는 직원이 횡령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서도 “하지만 동아건설이나 S 사처럼 조직의 허점을 악용해 마음먹고 횡령할 경우 구멍이 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