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건설은 최근 부산의 한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과 관련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데 이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SK건설이 MBC 일산드라마센터를 건립하는 과정에서의 비리 여부 또한 조사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SK건설 조사 건과 관련, 지난 10월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강운태 민주당 의원은 “국세청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SK건설 세무조사는 그 시기나 검찰, 경찰과 함께 전 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MBC 일산센터 공사 수주과정을 조사대상에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미디어법 처리 등과 관련해 정부·여권과 MBC 간의 편치 않은 관계가 SK건설 세무조사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을 짚은 것이다.
신동아건설에 대한 검찰 내사설 역시 재계는 물론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이 신동아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함께 2001년 이 회사가 중견 건설업체인 일해토건에 인수합병될 때 부당한 특혜가 있었는지에 대해 내사 중’이란 내용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상태다.
신동아건설 내사설의 경우 DJ 정권 실세 인사가 조사대상에 포함됐는지가 관심사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신동아건설이 규모가 크지 않았던 일해토건에 전격 매각된 것과 관련, 당시 정권 실세 개입 의혹이 불거졌던 바 있다. 정치권과 재계 일각엔 현 정권과 숙명적 라이벌일 수밖에 없는 DJ 정권 인사들에 대한 압박의 전초단계로 신동아건설 내사가 활용될 가능성에 대한 여러 풍문이 나도는 중이다.
조만간 매각 일정에 돌입할 예정인 현대건설도 재개발·재건축 관련 금품 로비설에 대한 사정당국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대매물이 될 것으로 평가받는 현대건설 매각일정에 변수를 미칠 만큼의 조사 결과가 나올지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밖에도 비공개 상태에서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건설업체들이 제법 있다. 최근 대형 건설업체 A 사는 한 지방자치단체 청사 입찰 비리와 관련한 사정당국 내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 회사의 임원을 지낸 한 인사는 서울 모 지역의 재개발 사업 관련 브로커로부터 수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력 건설업체 B 사의 지하철 연장 공사와 관련해서도 수천억 원대 비리 첩보가 검찰에 입수돼 현재 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업체에선 쉬쉬하고 있지만 핵심 임원들도 조사선상에 올라 있으며 사정당국이 이 회사 최고경영진의 재산축적 과정도 주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대형 건설업체 C 사 역시 사정당국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이 회사 오너와 특수관계에 있는 중견 건설업체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최근 진행됐는데 여기서 공사 원가 부풀리기 등을 통한 비자금 조성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자금이 C 사로 흘러갔는지, 그리고 회사 최고위층이 연루됐는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업체들은 모두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에 포진된 대기업 계열사들이다. 사정당국의 조사 범위가 불법 자금 조성과 관련한 것인 만큼 구체적 정황이 포착될 경우 회사 최고위층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그러나 사정당국의 칼날이 해당 건설사 오너들에게까지 직접적으로 미칠지는 미지수다. 사정당국 안팎에선 “효성그룹 수사와의 형평성 논란 덕분에 조사선상에 오른 기업들 오너들이 직접 다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사돈기업’이자 전경련 회장사인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봐주기’ 논란에 휩싸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정당국 주변과 재계에선 다른 건설업체 오너들이 사법처리를 받게 될 경우 안 그래도 진화가 쉽지 않은 효성 봐주기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침체에서 막 벗어나는 시점인 까닭에 재계에선 경기부양에 앞장서야 할 재벌들을 궁지로 몰아붙이는 대형 사법처리는 자제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한편 건설업계에 대한 사정당국의 전 방위적 조사 움직임과 관련해 일각에선 정부의 4대강 사업과 연결 짓는 해석을 제기한다. 지난 10월 22일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공정위가 19일에 이어 20일, 15개 대형 건설사를 방문해 4대강 공사 입찰 담합조사를 벌이고, 관련 자료들을 수거했다”고 밝혔다. 이에 정호열 공정위원장은 “공정위가 약 35명의 인원을 동원해 4대강별로 입찰담합징후 분석 시스템 가동에 돌입한 상태”라고 답한 바 있다.
최근 조사선상에 오르내리는 건설업체 대부분은 4대강 개발 참여가 확실시되는 대형업체들이다. 정부가 사활을 건 사업인 만큼 공사 초기부터 비리 우려가 있는 건설사들에 대한 기강을 잡기 위해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게다가 사정당국의 조사선상에 오른 업체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주력 계열사들이다. ‘이번 조사로 정부가 재벌가 인사들의 치부를 되면 향후 주도하는 경기부양 정책 등에서 재벌들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기 용이할 것’이란 분석도 재계와 정치권에 등장한 상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