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펀드를 환매한 투자자들은 뭉칫돈을 어디에 다시 투자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 | ||
해외펀드의 환매가 39일째 이어지며 자금이탈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해외펀드에서 279억 원이 유출됐다. 39일 연속으로 자금이 이탈하는 동안 누적 자금유출 규모는 총 1조 530억 원에 달했다. 해외펀드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난 2006년 6월 이후 최장 환매 기록인 20일 연속 유출 기록을 갈아치운 데 이어 연속 순유출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일 자금 유출 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지난 10월 27일과 28일에 각각 99억 원과 139억 원으로 줄어들었던 자금유출 규모는 29일, 30일, 11월 2일에 461억 원, 439억 원, 572억 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지난 10월 말 하루 평균 100억 원 수준으로 줄었던 유출 규모도 11월 들어 다시 400억 원대로 증가한 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금 유출 이유는 우선 해외펀드에 대한 주식 매매차익 비과세 조치 시한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올 연말이면 해외펀드를 통해 투자한 해외주식에서 벌어들인 차익에 대한 비과세 조치가 자동 소멸된다.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는 환율 방어를 위해 2007년 6월부터 200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된 조치로, 정부는 이를 연장하지 않고 자동 소멸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비과세 혜택을 누리던 고액 펀드 투자자들은 이제 매매 차익이 4000만 원 미만이면 14%의 세금을 물어야 하고, 매매 차익이 4000만 원 이상이면 누진 종합과세 대상이 된다. 올해처럼 해외펀드가 고수익을 올리는 상황이 되면 해외펀드에 1억 원만 투자해도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고액 자산가들은 한번 종합과세 대상이 되면 원천징수를 당할 때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내는 것은 물론 향후 국세청의 감시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직원도 “설명회를 나가보면 반 토막 펀드에 대한 처리방안을 묻는 투자자만큼 종합과세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투자자가 많다”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종합과세 대상 경계에 걸려 있는 투자자들”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올 들어 해외펀드의 환매가 쉼 없이 이어지는 것은 2007년 ‘묻지마 투자’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내 가족이, 친구가, 선후배가, 직장 동료가 펀드를 환매한다고 하니 어디에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나도 찾고 보자’는 식이다. 이처럼 너도 나도 서로 환매하겠다고 달려드니 결국 주가는 떨어지고 이는 다시 펀드 수익성 저하로 이어져 환매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사실 펀드를 환매한 투자자는 많아졌지만 환매 뒤 투자 전략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은 드물다. 펀드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원금을 회복했거나 수익이 조금이라도 났으니 더 늦기 전에 원금을 찾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펀드 환매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삼성증권은 환매 자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펀드를 모두 환매하는 행동은 장기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밝혔다.
김도현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아무리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게 세상만사지만 장기적인 운용이 가능한 자산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1~2년 구간으로 단기투자를 반복하는 전략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금의 사용기간을 잘 구분해 계획적으로 운용하고 재무목표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리밸런싱(포트폴리오 재조정)해 나가는 전략이 함부로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는 전략보다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대정 대우증권 WM리서치팀장은 “단기 시황에 흔들려 환매하는 식의 태도보다는 중기적 경기 전망에 따라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경기 사이클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단순 환매 행태를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미 ‘묻지마 환매’로 펀드에 들어갔던 돈을 몽땅 찾은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무대포 투자자’는 환매자금 중 향후 3년 이내 필요한 자금과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을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금의 사용기간을 잘 구분해 계획적으로 운용하고 재무목표에 부합하는 포트폴리오를 꾸준하게 재구축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3년 내 사용처가 불분명한 자금까지 이미 환매해버렸다면 우선 개인연금부터 연간 가능한 최대한도까지 불입하는 것이 적절하다. 만일 퇴직연금이 확정기여형(DC형)이라면 퇴직연금에 추가로 이 자금을 넣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을 불입하고도 남은 자금은 12로 나눈 후 향후 1년간 월간 적립식 형태로 투자하는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 자산 가격이 상승한다면 유동성 계좌에 전액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자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저가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3년 이내 필요한 자금을 현금화한 경우 자산운용의 전략 자체가 원금보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때문에 시장대비 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펀드나 스타일 펀드를 고려하되 이것저것 다 귀찮고 단지 원금보장만을 원한다면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원자재 관련 투자를 추천한 경우도 있었다. 오성진 현대증권 WM컨설팅센터장은 “세계 경기 회복 상황을 고려할 때 내년 하반기까지 원자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원자재의 경우 주식에 비해 더블딥이나 출구전략 등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