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르덴셜투자증권 인수 후보로 한화그룹, 롯데그룹, KB금융지주, 미래에셋이 거론되고 있다. | ||
재계의 대표선수로는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이, 금융권에서는 KB금융지주와 미래에셋그룹이 나선다. ‘푸르덴셜 고지’를 두고 펼쳐질 치열한 M&A 전쟁터에 미리 가봤다.
푸르덴셜증권 매각 주간사인 도이치증권은 지난 10월 KB금융과 한화증권, 미래에셋 등을 포함해 국내외 다수 회사에 매각제안서(IM·Information Memorandum)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IM을 받은 회사들은 한 달간의 실사를 한 후 숏리스트(우선협상후보) 선정을 위한 예비 입찰에 참여한다(오는 20일 마감).
M&A업계에서는 푸르덴셜증권의 매각가격을 프리미엄 없이 7000억 원, 프리미엄 포함해 대략 8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푸르덴셜증권은 푸르덴셜자산운용 지분 99.84%를 가지고 있어 증권 인수시 자산운용도 덤으로 가져올 수 있다. 푸르덴셜증권의 최대주주 미국 푸르덴셜그룹은 인수자가 희망할 경우 푸르덴셜자산운용을 분리매각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증권은 6000억 원 내외, 운용사는 2000억 원 내외에서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매각 금액이 적지 않아 푸르덴셜증권 인수전에선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의 이름이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한화와 롯데가, 금융권에서는 KB금융과 미래에셋이 출사표를 던져 4파전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대기업들이 신성장 동력으로 금융업 진출에 가속도를 내고 있어, 국내 자본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금융업계의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푸르덴셜증권 인수전에서 ‘산업자본 대 금융자본’의 진검 승부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화는 푸르덴셜증권 인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10월 9일 창립 기념식에서 김승연 회장이 “앞으로 금융부문은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며 그룹의 변화를 선도하는 강력한 축이 될 것”이라고 말해 금융부문에 힘을 실었다.
한화가 푸르덴셜증권(지점 수 75개)을 인수하게 되면 한화증권(48개)은 지점 수 161개의 동양종금과 137개의 현대증권에 이어 자기자본 1조 원 이상을 확보한 증권업계 3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 자산운용까지 인수할 경우 한화투신운용과의 합병으로 운용업계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러한 시너지 효과를 인해 대한생명에서 M&A를 주로 담당했던 이용호 한화증권 대표이사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푸르덴셜증권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 내부 관계자도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산업자본의 금융 진출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그룹 차원에서도 M&A 시장에 나온 푸르덴셜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롯데는 지난 2007년 3700억 원을 주고 인수한 롯데손해보험(옛 대한화재)의 보유자산을 제대로 굴리기 위해 자산운용업 진출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롯데도 한화처럼 금융업을 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으로 선택했다. 식품 중심의 제조업에서 호텔·백화점 등 상품 유통, 테마파크 등 관광서비스, 석유화학 등 장치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온 롯데가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금융업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8일 신동빈 부회장은 푸르덴셜증권 M&A에 대해 “언론에서 그럴 뿐 특별히 관심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답변을 했고, 롯데도 공식적으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가 최근 국내보다 해외 M&A에 주력하고 있어 실제로 푸르덴셜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 시각에도 자산운용의 필요성이 그룹 안팎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KB금융은 황영기 전 회장의 사퇴로 잠시 주춤하다가 강정원 회장대행이 다시 증권사 인수에 관심이 있음을 밝히면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KB금융은 올 상반기 기준으로 총자산이 333조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지만 국민은행의 비중이 전체 총 자산 중 90%를 넘어 은행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은행에 치중된 자산구조를 바꿔야 수익의 정체를 극복할 수 있기에 증권사 등 비은행부문 강화가 필요하다.
게다가 산업은행 민영화의 첫걸음인 산은금융지주회사가 지난 10월 28일 출범했고 우리금융지주 지분 7%의 매각이 진행되며 외환은행의 매각작업도 이루어지는 등 은행계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어 KB금융이 안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KB금융이 현재의 1위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증권사나 외환은행 인수 등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야 하는 것.
KB금융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증권사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고 10위권 이상의 규모가 되는 증권사 인수가 이뤄질 것”이라며 “푸르덴셜증권도 가능성 중에 하나”라고 답했다.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이 직접 푸르덴셜증권 인수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이 푸르덴셜증권 인수에 성공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펀드판매와 상품 개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래에셋이 상대적으로 약한 증권 분야에서도 수위에 오를 전망이다. 국내 지점 수만 180개가 넘게 되고 자기자본은 2조 1000억 원이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셋은 인수전에 뛰어들기 위한 실탄도 넉넉하다. 내부적으로 6000억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가지고 있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이익잉여금 역시 4000억 원이 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협상시 가격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