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이 ‘NLL 대화록’ 논란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참 나, 이런 일은 후진국에서도 없는 일이다. 국정원도 여권도 다 범죄행위를 했다. 국정원에 간 대화록은 분명 국정원장만 볼 수 있는 1급 비밀 문서였다. 원래 국가기록원에 가면 30년 동안 못 열어본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차기 정상회담에 참고해 잘 준비하려는 목적으로 국가기록원과 별개로 한 부를 갖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어떤 이유로 차관급까지 볼 수 있는 2급 문서로 바뀌었다. 문제는 직무상 2급 문서를 봤다하더라도 그것을 법적으로 발설할 수 없다는 거다. 얼마나 여러 사람이 본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범죄행위 하고 있다는 거다. 아마도 원세훈, 국정원, 청와대까지 지난 대선 때부터 선거 전략으로 기획한 것 같다. 지금 그게 다 들통 나고 있는 거고.”
―대화록을 공개한 장본인은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한마디로 국정원장으로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위법을 한 거다. 사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과 교감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대통령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반대로 대통령과 교감 없이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했다면, 이건 정말 우리나라 미래가 없다고 본다.”
―역시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여부다. 대화록에는 노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NLL을 포기한다고 표현한 부분은 존재하지 않지만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여야 간 해석의 차이가 존재한다.
“1999년과 2002년 서해교전 직후 문제 해결을 위해 2005년께 남북 간 해운합의서라는 것을 만들었다. 양측의 우발적 사고를 막기 위해 함정 간 서로 교신하자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게 운영이 잘 안 되더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서해평화협력지대라는 것은 정말 하루 이틀 해서 나온 거 아니다. 해운합의서 이후 2년 이상 연구하고 검토해서 나온 거다. NLL 문제를 두고 우리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 많이 했다. 그런데 정말 방법이 없더라. 법률적 기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NLL 문제는 국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아예 회담 자리에서는 NLL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선 얘기하지 말고,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포함한 서해평화협력지대로 NLL을 카펫 깔 듯 덮자고 했던 것이다. 실패하면 그저 다시 걷어내고 옛날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전문에 나와 있듯 우리가 NLL 없앤다는 말은 한 적도 없고, 마음도 없었다. 정말 새누리당이 실수한 거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2007년 10월 6일 군 지휘부와 오찬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NLL 문제는 법적인 것 다 덮어놓고, 누구 말이 옳건 그르건 우리 국민 건드리면 다 끝이다. 아무것도 해결 못한다. 기존 질서 위에 새로운 질서 덮어서 바다를 이용해야 한다’고. 군에도 분명히 한 얘기다. 절대 NLL 포기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나름의 NLL 문제 해결법이 서해평화협력지대였다는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에 그러지 않았나. ‘NLL은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고. 죽으면서 지키면 뭐하나. NLL은 우리 군함이 가서 지키는 곳이 아니다. 그러면 정전협정 위반이다. 결국 평화적 방법으로 지켜야 한다. 노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가 바로 그런 개념이었다. 서해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해 무력 충돌을 막아야 한다. 지금 여권이야 연평도 포격사건도 있었고, 천안함 사건도 있었다. 도대체 지키긴 뭘 지켰나. 최소한 우리가 지켰을 때는 피는 안 흘렸다.”
―하지만 대화록 공개 전, 이 전 장관 본인이 ‘대화록에는 NLL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고 하면서 위증 논란에 휩싸였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내용(NLL 포기 발언)의 대화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었고, 두 번째는 그와 관련한 그 어떤 비밀 회동, 비밀 녹취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NLL 자체가 회담의 의제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회담에 NLL이라는 단어가 안 나왔느냐’고 묻기에 나는 ‘그렇게 묻지 말라’고 했다. 중심은 NLL이 아니라 서해평화협력지대였다.”
―서해평화협력지대의 핵심 사안으로 줄곧 ‘해주 특구’가 등장했다. NLL과 서해평화협력지대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노 대통령은 해주 특구 안을 꺼냈는데.
“단순히 공동어로구역은 안 됐다. 경제와 평화를 엮는, 처음부터 선순환적 개념으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해주항과 해주 공업단지 안을 제안했던 것이다. 해주가 풀려야 서해평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처음에 김정일 위원장도 부정적 입장을 취하다 후반부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설득에 공감하지 않았나.”
2007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송 오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산업협회에서 간곡하게 얘기를 하더라. 중국이나 동남아도 이제 수지 타산이 안 맞고, 우리가 살 길이 없으니, 북한에 조선산업단지를 만들게 해달라고. 한국이 최고의 조선 산업 국가인데, 북한에 기술도 주고 하면 북에도 이득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한 것이다.”
―이러한 NLL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대화록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절치 못한 언사와 저자세를 두고 시비가 붙고 있다.
“노무현 화법은 반어법이다. 한국이 친미국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앞뒤 맥락을 봐라. 미국이 얼마나 패권적이고 무서운 나라인지를 북한에 얘기한 것이다. 영국이라는 강국도 미국 앞에서는 자주를 못하니 우리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결국 노무현의 화법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자주 시비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도 북한도 미국을 버리고는 못 간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얼마나 고민해서 한 얘기인가.”
―노 전 대통령의 시간끌기를 두고도 말이 많다. 당시 회담장 분위기는 어땠나.
“기싸움이 팽팽했다. 저자세? 그런 것 없었다. 우리는 오히려 전략적으로도 철저히 준비했다. 전체적으로 대통령이 큰 틀의 얘기를 하고 통일부 장관인 나는 이산가족문제와 백두산 관광 등 전문적인 이야기를 꺼내겠다는 역할 분담과 나름의 전략도 다 짜서 올라갔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회담 시간 연장을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7년 만에 열린 정상회담인데, 그것도 또 언제할지 모르는 판국인데 얼마나 할 얘기가 많겠나.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합의해 놓고 가야만 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은 실무급 회의에서 나머지 현안을 얘기하자 했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체제라는 것이 국방위원장 아니면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또 솔직히 우리가 앞서서 많은 것들을 합의해 놓고 나가면 다음 정권도 돌이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얘기를 선언문에 담을 수 있어 대만족이었다.”
―노무현 재단에서 오늘(6월 27일) 오전 해당 인사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재단(이재정 전 장관은 노무현 재단의 이사로서 당시 기자 회견에도 참석했다)에서 연구하고 조치를 강구하겠다. 민주당도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뭐 당연히 법적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 제대로 설 수 없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한국 넘어 중·미와 대화하겠단 메시지”
지난 6월 27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에 대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24일 대화록이 공개되고 침묵을 지킨 지 사흘 만에 나온 반응으로 벌써부터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남북정상회담 기념촬영. 왼쪽부터 백종천 안보실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노 대통령, 김 위원장, 권양숙 여사, 권오규 재경부총리, 김만복 국정원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은 이날 조평통이 긴급 성명서를 낸 시간이다. 이날 성명서는 이유는 명확치 않으나, 해도 뜨기 전인 새벽 4시에 나왔다. 이에 대해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조평통이 새벽 4시에 성명서를 낸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과 중국에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현지시각 오후 3시경이었고, 중국은 오전 5시경이었다. 한국을 넘어 중국,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장관직 끝나자마자 한나라로 가다니…”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5월 김장수 신임 연합사 부사령관에게 계급장을 달아주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에 대해 이재정 전 장관은 “지금 마치 노무현 정부에서 회담 당시 김장수 실장만 NLL을 지켰던 것으로 회자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된다”며 “그것은 이미 노 대통령이 당시 김 실장에게 ‘국민 정서상 NLL은 양보 못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준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김장수 실장은 노무현 정부 인사 아닌가. 장관직 끝나자마자 한나라당에 간 것은 정말 상거래 수준 이하다. 그래도 명색이 장관이었는데”라며 김장수 실장의 지난 과거와 현재의 행적에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