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잔류 인원들이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하는 모습이다. 남북관계 역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운영 원칙에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 사례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비정상의 정상화’로 요약되는 박 대통령의 개혁관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오랫동안 모셔온 사람들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훨씬 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수석 스스로도 같은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26일 오전 브리핑에서도 이 수석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거론했다. 그는 “대통령 당선 이래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려는 대통령의 평소 꿈과 의지가 드러난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면서 “대통령이 돼 많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된 뒤로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은 분야에서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려 하는 크고 작은 의지와 의욕을 늘 갖고 계시다”고 말했다. 비정상의 정상화에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 국정운영 기조가 녹아 있다는 얘기였다.
이 발언은 국가정보원이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 여야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청와대가 대화록 공개는 전적으로 국정원의 판단이라며 거리를 둬 왔던 터라, 이 수석의 발언은 청와대 역시 국정원의 판단에 최소한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았다.
이 수석은 이에 앞서 6월 17일 박 대통령이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싸고 ‘모피아(재무부 출신) 독식 논란’이 이는 것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났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해명하면서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언급했다. 당시 이 수석은 “대통령께서는 비정상적인 부분들, 국민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과감히 개선하고 고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환원하는 게 맞다는 인식을 갖고 국정운영을 하고 있다”며 “인사 부분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6월 14일 국정원 경제단 일부 직원들이 개인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이 수석은 “모든 것에 있어서 비정상이 정상화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영역이건, 누구건 관계없이 비정상은 정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좀 더 멀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이었던 1월 말에도 이 수석은 인수위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입에 올렸다. 당시 재벌그룹 총수 사면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었는데, 그는 “당선인(박 대통령)께서는 법치를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대단히 강하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제도, 관행, 의식 등 비정상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박근혜 정부는 그런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 대통령은 특별사면 제도의 문제점을 공개석상에서 2차례 거론했다.
이쯤 되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 기조와 원칙이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주변 사람들은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개념이야말로 박 대통령의 행보를 이해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툴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민주평통 간부위원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제공=청와대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국지전이 벌어졌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관광객이 넘나들고 공장 근로자들이 오가는 상황이야말로 비정상적”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자 회담 수석대표의 ‘격’을 문제 삼아 결국 회담이 무산된 것 역시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설명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전 정부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북한의 태도도 용인이 됐고, 무리한 요구도 수용이 됐던 측면이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런 것들을 모두 비정상적인 잘못된 관행으로 본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게 대통령의 뜻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과정에서 청와대와 모종의 협의를 거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제성 발언들이 담긴 대화록을 공개하는 게 박근혜 정부의 일련의 대북 행보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박 대통령의 기조와 철학은 대체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정치적 영역이나 남북관계, 외교 등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표면적으로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깨뜨림으로써 보다 정상적인 관계가 가능해지고 국민들의 지지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칫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외교 전문가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개념구조상 선과 악으로 나뉘는 이분법과 같다”며 “외교나 특히 남북관계에서 이런 식으로 정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대북정책이 이명박 정부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새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며 “지금처럼 냉랭한 관계가 이어지다가 북한이 본격적인 도발에 나선다면 박근혜 정부는 결국 전임 정권 5년과 마찬가지로 대치와 도발이 반복되는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정치권에서, 남북관계에서, 국제관계에서도 엄청난 역풍을 맞고 있다. 정상화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이번 대화록 공개 자체가 ‘비정상의 극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 시스템은 당장 손해가 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서 “앞으로 누가 한국 대통령하고 속 깊은 얘기 할 수 있겠나. 국제관례로 보면 아주 변방 나라가 하는 몰상식한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밝혔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