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살해된 두 자매 가족들이 살던 경기도 수원시 매산동의 집. 현재 이곳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지난 1998년 4월 16일 오전 9시. 경기도 수원시 매산로 3가에 살고 있던 A 씨는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등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셋째 딸은 이미 일이 있어 아침 일찍 나간 상태였다. 첫째 딸(당시 26세)은 회사 연차를 내고 늦잠을 자고 있었고, 둘째 딸(당시 24세)은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A 씨는 그렇게 두 딸을 집에 남겨두고 등산을 나섰다.
몇 시간 후 A 씨가 수원 인근의 산을 오르고 있는데 경찰들이 그를 부르며 급히 달려왔다. 그를 찾아 산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던 A 씨에게 경찰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A 씨의 두 딸이 집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것.
그는 정신없이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둘째 딸은 왼쪽 가슴을 단번에 칼로 찔려 사망했다. 큰딸은 온몸을 난도질당한 채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설명한 피살 추정 시간은 9시 30분경. 그가 집을 나선 지 불과 30분 후였다. 경찰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현장에서는 아무런 증거물이 나오지 않았다. 주변 용의자를 추려 심문에 나섰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난 1999년 2월 27일, 경찰은 수원 자매피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A 씨 집 근방에서 전셋집을 보러온 손님으로 가장해 가정집에 들어가 상습적으로 강도짓을 한 혐의로 이 아무개 씨(당시 27세)가 체포됐는데, 그가 경찰에서 여죄를 추궁받다 “1년 전 A 씨 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여자 두 명을 죽이고 도망갔다”고 진술한 것. 경찰은 이 씨를 상대로 현장검증까지 실시한 후, 수원 자매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그러나 이 씨는 “두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경찰에서 했던 자백을 검찰에서 번복했다. 이 씨 본인의 진술 말고는 뚜렷한 증거가 없었던 검찰은 경찰에 추가 수사(1년여에 걸쳐 진행됨)를 지시했지만,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공소를 제기하지 못하고 살인죄에 대해선 혐의없음 처분을 내려야만 했다. A 씨의 속은 타들어갔지만, 그렇게 아까운 시간은 흐르고 흘러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난 올해 4월 16일 공소시효는 결국 만료되고 말았다.
기자는 그로부터 다시 두 달이 지난 6월 26일 A 씨를 만났다. 그는 두 딸을 잃고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고 있었다.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됐다고 한다. 부인과 막내딸과도 헤어져 따로 살고 있었다. 살던 집에서도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갔다. “집에 있으면 딸들이 생각나 누워있을 수 가 없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그 집은 현재 아무도 살지 않고 비어있었다.
이제 공소시효가 끝나 범인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할 수 없는 상황. A 씨 역시 경찰의 주장처럼 용의자 이 씨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나 A 씨는 이 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범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씨를 경찰 조사과정에서 두세 번 본 적이 있다. 키는 165cm 정도에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런 자가 어떻게 40cm 길이의 식칼로 두 딸을 죽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이 씨가 금품을 노린 범행을 저질렀다면 자신의 집에 침입할 이유도, 살인을 저지를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주변 집들에 비해 오래되고 허름했다. 그런데 이 씨가 왜 아침에 우리 집을 털러 들어왔겠느냐. 그리고 절도를 하러 들어왔다 딸들에게 걸렸다면, 충분히 그냥 도망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사람을 죽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두 자매의 피살이 아버지 A 씨를 둘러싼 치정에 따른 복수극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동네에 살고 있던 한 주민은 “1998년 당시 A 씨가 등산을 다니며 만나는 유부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여자의 남편이 알게 됐다”고 조심스레 귀띔했다. 그래서 그 남편이 복수를 위해 A 씨의 딸들을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그러나 A 씨는 그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당시 A 씨에게 만나던 여자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여자의 남편은 교도소에 있었다고 밝혔다.
A 씨는 자신이 15년 동안 확신하는 범인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인은 한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가까운 지인으로 원한 관계에 의한 계획된 살인이라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그는 “범인은 내가 산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와 차를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며 “내 가슴에 평생 상처를 남기려는 의도에서 내가 아닌 자식들에게 해를 끼쳤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A 씨를 알고 있는 동네의 한 주민은 “A 씨가 최근까지도 사건이 발생했던 4월만 되면 술을 먹고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지인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싸운다”고 전했다.
A 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두 딸이 나오는 꿈을 생생하게 꾼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그냥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이제 공소시효도 끝났고 검찰과 경찰에서도 사건을 장기미제로 종결 처분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평생 한을 품고 사는 것”이라고 씁쓸하게 되뇌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우린 검·경 신경전의 희생양”
검찰과 경찰은 왜 지난 15년 동안 수원 자매피살사건의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아버지 A 씨(67)는 자신들이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을 둘러싼 신경전의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고 10개월이 지난 1999년 2월에 이 아무개 씨(당시 27세)를 A 씨 딸들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라고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이 씨는 검찰에서 “A 씨 두 딸을 죽이고 도망갔다”는 경찰에서의 자백을 번복했고, 이에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경찰에 추가조사를 지시했다. A 씨는 “경찰의 입장에서 이것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경찰이 ‘검찰이 우리를 골탕 먹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그래서 수사 결과에 미흡한 점이 있어도 경찰에서는 이 씨를 범인으로 밀어붙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또한 경찰의 재수사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사건이 발생하고 첫 수사 이후에도 내가 진정을 넣어 두 번의 재수사가 있었다. 그런데 초동수사에서 일반 형사로 참여했던 이가 2번째 수사에서는 반장, 3번째는 팀장으로 승진해 딸들의 피살 사건을 담당했다. 같은 사람이 매번 수사에 참여하니 어떻게 이전 수사 결과를 번복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꼴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수사과정에서 잘못은 없었고, 이 씨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한 경찰은 “검찰이 사건 현장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면 기소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 씨는 검거 직후 진술에서 우리가 불러주는 내용을 시인한 게 아니라 스스로 범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장기 미제로 빠지고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미진해지자 A 씨는 사방으로 범인을 밝혀내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검찰과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진정을 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30페이지가 넘는 탄원서를 작성해 몇 번이고 국가기관에 제출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수원지검 강력부는 공소시효 만료일을 얼마 앞두지 않던 시점에서 주변 인물들과 당시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던 이 씨 등을 상대로 재조사까지 벌였지만 결국 범인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허송세월만 보내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15년이 흘렀고 결국 공소시효는 끝나고 말았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