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둘러싼 재계의 로비전이 관심을 끌고 있다.
“잘 모르겠는데, S 그룹 쪽 사람을 만나신 것 같아요.”
그 의원과 S 그룹이 실제 어떠한 ‘거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후원금인지, 아니면 다른 대가가 오갔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경제계의 로비가 국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외부 압력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6월 임시국회가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간 가운데, 이번에도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둘러싼 재계의 로비전이 관심을 끌고 있다. 각종 관련 법안에 대해 경제계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만,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막후 로비’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은 국회동향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조직을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대관(CR, Corporate Relation)’팀이다. 국회 동향파악과 로비는 대관팀의 업무 가운데 하나다. 대관팀은 오랜 시간을 투자한 인적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자산인 만큼 담당 직원이나 임원들의 변화가 거의 없다. 각 부처 담당 부서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혹은 보좌관들과의 인연이 얼마나 길고 깊은지가 대관팀의 로비력을 좌우한다.
한 대기업 인사는 “갈수록 사회구조가 고도화되고 관련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한 분야의 사업에 대해 회사의 정책방향 결정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이 많아지다 보니, 정부나 국회 사이드의 정보가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도 대관 업무에는 능력 있고 인맥관리에 뛰어난 직원을 배치하고, 임원까지 승진시키며 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회 상임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가장 많이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조직이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대관팀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기정사실로 굳어진 평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가장 많이 다룬 정무위원회, 노동관련 쟁점 법안들이 논의된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들 대관팀들의 제1 타깃이었다. 법안심사소위, 전체회의가 열릴 때마다 국회 관계자나 보좌관을 통해 파악된 회의상황이 실시간으로 ‘헤드타워’로 전달된다. 대관팀에 소속된 한 대기업의 부장은 “상임위 동향을 체크하다 보면 어느 의원이 열쇠를 쥐고 있는지 파악된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몇몇 핵심 의원들에 대한 맨투맨식의 설득과 로비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비화되는 씨앗이 여기서 뿌려지는 것이다. 기업의 주문과 국회의원의 주문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로비가 성사된다. 금품이 오가면 뇌물사건이 되지만, 최근에는 인사청탁과 각종 편의제공 수준에서 번번하게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청탁을 하는 문자를 보내다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일 등이 이러한 풍조를 대변해준다.
사실 국회 입법은 기업의 환경변화는 물론 생존까지도 결정할 정도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한 총수 일가의 편법 증여와 승계를 막기 위해 진행된 ‘일감몰아주기’ 규제,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는 순환출자 금지 관련 법안, 은행의 비은행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은행의 대주주 자격심사제도 강화 등 입법의 내용에 따라 각 대기업마다 수조 원의 자금을 들여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내용들인 만큼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입법안이 기업 공동의 사안일 경우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공개적 로비’가 이뤄진다. 지난 4월 잇따른 불산 누출사고 이후 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에 부응해 추진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도 당초 환경노동위 논의 과정에서 과징금 기준이 매출액의 50% 이상에서 매출액의 10% 이내로, 최종에는 5% 이내로 조정됐다. 과징금이 과도하다는 경영단체들의 ‘반발’에 의원들이 한 발씩 물러선 것이다. 그 즈음 경제5단체 상근부회장단이 국회를 찾아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경제민주화 법안의 무리한 추진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재계의 공개 압박이 제대로 ‘약발’을 발휘한 결과다.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경제5단체 상근부회장들이 국회에 찾아와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바꿔달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면서 “법사위를 6년째 하고 있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고 입법 로비를 비판하기도 했다.
오는 7월 2일 마지막 본회의를 남겨둔 6월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의 성공률이 얼마나 될지, 재계의 공개적 로비의 효과가 어디까지 나올지를 주시하는 눈들이 많다.
박웅채 언론인
파격적 대우 스카우트 러시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지난 4월 이후 국회 보좌관 10여 명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통 5000만~6000만 원 안팎인 연봉도 두 배에 가까운 1억 원대로 올려 받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은 영입한 보좌관들이 기업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법안 통과 여부의 핵심이 야당 의원들이어서 야당 소속 의원 보좌관들에게도 스카우트 제의가 많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야당 소속의 초선·재선·중진의원의 보좌관들이 모 그룹의 각 계열사로 이직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야당 의원실 보좌관은 “국회에서 갑갑함을 느껴 기업으로 옮길 생각을 하는 보좌관들이 늘고 있다”면서 “훨씬 좋은 대우나 기업업무 환경 등을 따져서 장래를 보고 가능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