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고 최종건 SK 창업회장 35주기 추모식에서 최신원 SKC 회장(오른쪽)과 최태원 SK 회장. | ||
최신원 SKC 회장은 얼마 전 그룹 지주사인 SK㈜ 주주 명부에서 이름을 내렸다. 종전까지 5510주를 갖고 있던 최 회장은 지난 9월 21일 장내매도를 통해 2510주를 매각한 뒤 10월 22일 남아 있던 3000주까지 모두 팔아치웠다. 지분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오너 일가의 대표적 경영인으로서 지주회사제 전환 과정이 급물살을 타는 시점에 지주사 지분을 전량 처분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최 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SK에너지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지난 7월 30일 보유 중이던 SK에너지 주식 4500주 중 2200주를 매각한 최 회장은 9월 15일 잔여분 2300주를 모두 처분, 주주 명부에서 이름을 내렸다.
최신원 회장이 보유 주식을 처분해 거액을 마련하면 그간 재계에선 대개 “SKC 주식을 사들이겠지…”라고 전망해왔다. 늘 그래왔듯 최태원 회장의 SK㈜가 SKC 지분 42.50%를 보유, 굳건히 지키고 있는 최대주주 지위에 맞서려는 거북이식 행보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최신원 회장은 그러나 한동안 SKC 주식을 사들이지 않았다. 지난 4일에야 SKC 주식 5000주 매입에 이어 10일 3000주를 추가로 매입했을 뿐이다. 이는 지난 7월 15일 SKC 주식 1만 주 매입 이후 약 4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 몇 달간 최신원 회장의 시선은 SKC가 아닌 SK네트웍스에 쏠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9월 15일과 17일 18일, 3일에 걸쳐 SK네트웍스 주식 2만 2400주를 사들인 데 이어 10월 21일엔 6000주를, 그리고 지난 2일에 5000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9월 중순까지만 해도 1만 8000주에 불과했던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 주식 총수는 현재 5만 1400주로 불어난 상태다. 불과 두 달 사이에 보유 지분을 세 배로 늘린 셈이다.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 지분율은 현재 0.0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주식 매집이 관심을 끄는 것은 재계에 파다한 ‘최신원 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SK네트웍스와 워커힐 경영권을 요구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최신원 회장 주변에선 이 같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지만 SK 측은 “윗분들끼리 사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SK네트웍스는 최근 들어 기업가치를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 9월 21일 공시를 통해 워커힐에 대한 흡수 합병을 알렸다. SK C&C 지분 15%를 갖고 있던 SK네트웍스는 최근 SK C&C 상장 때 지분 처분으로 거액의 투자자금까지 ‘장착’한 상태다. 문제는 최신원 회장이 SK네트웍스를 차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 지분율은 0.02%에 불과한 상태. SKC에서와 마찬가지로 최태원 회장의 SK㈜가 보유한 지분 39.98%의 벽이 너무 높다. 게다가 SK네트웍스는 지난 2007년 워크아웃 당시 최태원 회장이 1200억 원대 개인 재산을 무상 출연한 회사다. 최신원 회장이 선친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워커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에 ‘SK네트웍스+워커힐 합병법인’을 탐내는 만큼 최태원 회장의 개인적 애착도 남다른 셈이다.
SK네트웍스는 최태원 회장이 애지중지해온 것으로 알려진 SK증권 지분 22.43%를 지닌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최근 몇몇 재벌들이 금융지주사 설립을 검토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SK가 이를 도모할 경우 SK증권 최대주주인 SK네트웍스가 가장 유력할 것이란 분석이 증권가에 퍼지기도 했다. 이에 최신원 회장의 SK네트웍스 지분 매입은 SK네트웍스를 계열분리 대상 후보로 공론화시켜 최태원 회장 측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되는 분위기다. 당장 SKC나 SK네트웍스에 대한 계열분리 시도를 할 수 없는 최신원 회장이 ‘주식 매입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는 게 일각의 분석이다.
최근 SK그룹 안팎에선 내년 초 정기인사를 통한 최태원 회장 직할체제 강화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 친동생 최재원 SK E&S 부회장이 올 초 SK㈜와 SK텔레콤 등기임원을 맡은 데 이어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SK텔레콤 같은 주력계열사 CEO로 옮겨갈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현재 SK네트웍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창규 사장은 최태원 회장의 총수 취임 초기인 2000년대 초반 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에서 최 회장을 보좌했던 인물이다. 연말 정기인사에서 SK네트웍스 등 주력계열사 요직에 최태원 회장의 신진 측근 세력이 추가로 배치될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룹 내 영향력을 점점 높여가는 최태원 회장과 측근 세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최신원 회장이 어떤 ‘분가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