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그룹이 온미디어 인수를 위해 오리온 측과 물밑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합성. | ||
12월 첫째 주 어느 날 재계 정보통들 사이에 갑자기 CJ그룹 관련 사발통문이 나돌았다. ‘CJ 주요 임원들이 저녁 일정을 취소하고 회사로 복귀 중’이란 내용이었다. CJ 동향에 관심이 큰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며칠 후 다시 한 번 소식통들 사이에 ‘서울 모처에서 MSO(Multiple System Operator·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사장단 긴급 회동이 열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같은 정황은 한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CJ그룹의 케이블 채널 온미디어 인수 움직임에 따른 대응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대형 PP(Program Provider·프로그램공급자)인 CJ의 온미디어 인수 추진설이 다시 확대되면서 긴장한 MSO들이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 것이다.
사실 CJ의 온미디어 인수설은 지난 6월부터 퍼졌다. 이에 지난 6월 19일 유가증권시장본부가 CJ의 온미디어 인수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같은 날 CJ그룹 지주사 CJ㈜는 공시를 통해 “계열회사인 CJ오쇼핑에서 온미디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3개월가량 지난 9월 4일 온미디어는 “당사는 최대주주인 오리온으로부터 ‘지분 매각을 검토하였으나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공시했다. 이후로도 CJ와 오리온 측이 온미디어 매각 협상을 벌이다 가격이 맞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줄곧 흘러나왔지만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CJ의 온미디어 인수는 CATV 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사안이다. CJ 계열의 CJ미디어는 CATV 최초의 종합오락채널 티브이엔(tvN)과 음악채널 엠넷(Mnet), 영화전문 채널 씨지브이(CGV)를 비롯해 엔터테인먼트 채널 엑스티엠(XTM)과 올리브, 스포츠채널 엑스포츠(Xports), 만화채널 챔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오시엔(OCN), 온스타일, 투니버스 등 10개 채널을 보유한 온미디어까지 합쳐질 경우 보도를 제외한 국내 CATV PP 시장은 사실상 CJ가 ‘접수’하는 셈이다. 이는 MSO들의 PP들을 상대로 한 영향력 행사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까진 CJ나 온미디어 측이 매각협상과 관련된 공식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인수협상 소문만 파다하게 나돌면서 별다른 결과가 없다보니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항간에선 오리온 측이 CJ의 인수 의사를 온미디어 가치를 올리는 데 활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6월 초만 해도 2800원대였던 온미디어 주가는 CJ로의 피인수 소문을 거치면서 7월 한때 4000원을 뛰어넘기도 했다.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12월 초에 들어서면서 다시 장중 400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온미디어 인수설과 관련해 CJ그룹 관계자는 “인수를 희망하는 것은 맞고 물밑협상도 계속해서 벌여왔다”면서도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온미디어 측 역시 지난 10일 공시를 통해 “당사의 최대주주인 오리온으로부터 ‘CJ의 인수의향과 가격에 대한 제안을 받았으나 현재 어떤 사항도 결정된 바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온미디어 매각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최근 다시 ‘인수설’이 급속도로 번지는 배경에 ‘삼성생명 상장 특수’가 깔려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CJ㈜는 삼성생명 주식 63만 9434주(지분율 3.20%)를, CJ제일제당은 95만 9151주(4.8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 측 의도대로 삼성생명 상장 주가가 70만 원 이상 간다면 단순 계산으로 CJ 보유 주식 평가총액은 1조 2000억 원가량이 된다. 굳이 삼성생명 주식을 보유할 필요가 없는 CJ로선 삼성생명 상장 특수로 거액의 투자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CJ의 미디어사업 강화 여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누나 이미경 CJ그룹 미디어앤엔터테인먼트 총괄 부회장의 입지와도 맞물려 묘한 해석을 낳기도 한다. 그룹 내 방송 영화 등 미디어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미경 부회장은 현재 경영자로서의 주가를 계속해서 높여가고 있다. 엠넷의 공개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는 8%대 시청률을 기록해 공중파 부럽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얼마 전 ‘마마’(MAMA·엠넷뮤직어워드)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10여 개국에 동시 중계, 글로벌 가요제로 거듭나게끔 만들기도 했다.
CJ그룹 안팎에선 미디어 계열 대박 행진의 주역으로 주저 없이 이미경 부회장을 꼽는다. 지난해 9월 터진 이재현 회장 비자금 의혹 사건 수습 과정에서 이미경 회장 측근인사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이 역시 이 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CJ의 주력분야라고 할 수 있는 식품업에 비해 이미경 부회장이 이끄는 미디어사업이 더 큰 주목을 받으면서 항간에는 남매간 계열분리설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CJ의 미디어사업 강화 여부가 이미경 부회장의 훗날 독자행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재계의 관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그동안 CJ 측은 계열분리설에 대해 극구 손사래를 쳐왔다. CJ 사정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들도 당장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부회장의 독자행보엔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 독립에 필요한 지분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CJ미디어는 CJ㈜가 지분 50.14%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을 총괄하지만 개인 지분율은 1.32%에 불과하다. 그룹 지주사인 CJ㈜는 이재현 회장이 지분 42.01%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이 부회장에겐 단 한 주도 없다. 이재현 회장이 커다란 선심을 쓰지 않는 이상 지금의 지분구조상 이미경 부회장이 계열분리를 도모할 수는 없는 셈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