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SK텔레콤은 공시를 통해 “파이낸스 사업과 관련해 하나카드의 지분 취득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신업계의 본격적인 금융업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고 10월 출범한다던 하나카드는 11월에야 SK텔레콤의 지분참여 없이 하나금융 100% 자회사로 출범했다. 금융권에서는 협상 난항의 주원인을 SK텔레콤과 하나금융이 경영권을 놓고 지분 51% 확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꼽았다.
일각에서는 지분율보다는 인수 가격에 대한 이견 때문에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의견도 대두됐다. 하나금융이 하나카드 지분 49%에 대해 8000억 원가량을 요구한 반면 SK텔레콤은 3000억~4000억 원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영권은 하나금융이 보유하고 SK텔레콤은 2대주주로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인수 가격은 4300억~4600억 원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이 경영권을 양보하는 대신 인수 가격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며 “SK텔레콤이 본부장급을 비롯한 임직원 100여 명을 하나카드에 배치할 계획이라 2대주주로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금융업에 진출한 만큼 자신들의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겠다는 의지 표현인 것이다.
7개월간 지루하게 끌어오던 지분제휴가 사실상 타결되면서 SK텔레콤은 금융과 통신을 결합한 새로운 영역을 선점했으며 하나금융은 내년에 본격화 될 은행권 M&A(인수·협상)를 앞두고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외환은행보다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하나카드는 SK텔레콤의 지원을 받아 5년 내에 국내 3대 신용카드 회사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SK텔레콤은 OK캐시백 회원 등 3200만 명에 이르는 막강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카드가 SK텔레콤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고객 모집 공세에 들어간다면 2014년 회원 수 1000만 명에 시장점유율 12%를 이룩하겠다는 꿈이 현실화할 수 있다.
카드업계에서는 플라스틱카드를 넘어 모바일카드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나카드가 ‘통신공룡’인 SK텔레콤을 등에 업고 등장해 업계가 술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모바일카드 등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모바일카드를 확산시킬 수 있는 결제단말기의 보급이다. 한 대에 10만 원 정도하는 단말기를 전국 200만 곳이 넘는 가맹점에 보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씨(BC)카드 인수를 위해 신한카드나 우리은행 농협 등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진 KT가 인수에 성공하고, 경쟁 통신업체들이 연합해 결제단말기 설치를 한다면 시스템이 변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휴대전화가 신용카드를 대체한다면 신용카드 시장은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하는 모바일 중심으로 변신해 통신과 금융의 융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앞서의 카드업계 관계자는 “결제 수단이 변하면 통신업체와 결합하지 않은 카드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도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