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상장사의 대표 종목은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기업이 많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글로벌 경기흐름과 자금흐름은 이들 경기민감 수출업종의 업황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들이 다루는 기업들도 세계에 퍼져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다루는 IT업종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에 한정된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애플, 소니, 노키아 등 전세계 IT기업을 해당 지역에서 직접 분석한다. 글로벌 자금흐름에 대한 정보도 국내 증권사를 압도한다. 전세계 네트워크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자금이동 정보를 공유해 경기 및 시장상황 판단을 내린다. 국내 대기업들과 얽힌 이해관계도 적다.
한 펀드매니저는 “외국계 증권사는 해외 현지 사정에 밝기에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현황을 잘 알 수 있다. 또 해외 경쟁사를 통해서 국내 기업들 정보도 얻는다. 게다가 글로벌 시장 전체에 대한 조망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시장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펀드매니저도 “글로벌 자금흐름을 결정하는 주요 선진국의 금융정책에 대해서도 외국계들은 엄청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요즘처럼 각국 금융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황에서는 현지에서 정책 당사자들과 직접 네트워크를 가진 외국계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심지어 정부나 청와대에서도 주요한 경제정책을 펼치기 전 외국계 증권사들의 견해를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럼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만 따라하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입장차다. 보통 글로벌 투자자는 전세계를 투자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각 업종, 기업을 상대적으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실적전망이 좋지 않더라도 다른 글로벌 IT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좋으면 매수 보고서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 실적전망이 좋더라도, 경쟁 IT기업의 실적전망이 더 좋으면 삼성전자 비중을 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세계 기업을 상대로 투자하는 입장에선 유효한 보고서이지만, 국내에만 투자하는 입장이라면 좀 달라진다. 이 경우 현대차,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과의 상대적 비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환율 금리 등 투자 조건에서도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이는 크다. 즉 외국인은 환차익, 금리차익도 기대수익률에 반영하지만, 내국인은 다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답보하더라도 원화 강세로 환차익이 가능하면 삼성전자를 매수할 수 있는 게 외국인의 입장이다. 외국계 증권사 출신의 한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세계 각지의 주요 네트워크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비교, 분석해 최종적인 투자판단을 한다”고 전했다.
최열희 언론인
헤지펀드 등 돈벌이 직결
국내 증권사에서 매도(Sell)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중립(Neutral) 보고서가 사실상 매도 보고서’라는 게 정설이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매도 리포트가 적지 않게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IB의 수익이 고객의 투자성과와 비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IB들은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본인 회사 돈을 투자하기도 하고, 투자자들의 성과에 따라 성과보수를 받는 경우도 많다. 잘못된 투자정보 제공은 ‘부메랑’이 되기 쉽다. 반면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원은 투자성과보다는 거래규모에 좌우된다. 투자중개수수료가 주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고객과 함께 펀드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고, 성과보수도 거의 없다. 물론 주가가 오르면 거래금액도 그만큼 커지지만, 글로벌 IB처럼 고객 투자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헤지펀드들에게는 매도 의견도 훌륭한 투자조언이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주식을 사는 것(Long)뿐 아니라, 공매도(Short)하는 투자기법도 사용한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내다팔아 현금화하고, 주가가 싸지면 다시 주식을 사서 되갚는 기법이다. 따라서 매도 의견은 공매도 조언이 된다. 해외에는 공매도만 전문으로 하는 투자펀드도 있다. 이들 역시 글로벌 IB에게는 주요 고객이다.
미국 뉴욕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공매도를 시장 혼란의 주범인 양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면서 “주가가 다시 오를 것을 전제로 할 때 공매도하는 것이지, 주가가 계속 빠지거나 부진하다면 공매도도 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예를 들어 A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위해서는 A 종목 주식을 가진 주주에게서 주식을 빌려 팔아야 하는데, 주가가 계속 부진하다면 A 종목의 원래 주주는 주식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A 종목 주주 입장에서는 공매도로 주가가 단기간에 하락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가가 반등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주식을 빌려주는 것이다. 아울러 A 종목 주주가 해당 주식을 추가 매입하고 싶을 때도 공매도는 싼 값에 추가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공매도 자체가 글로벌 IB들에게는 돈벌이다. 글로벌 IB들은 주식을 사는 매매뿐 아니라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에도 간여한다. 공매도는 주로 헤지펀드들이 사용하는데, 글로벌 IB는 이들의 투자활동을 지원하는 프라임브로커이기도 하다. 즉 공매도 할 종목의 주식을 가진 쪽과 헤지펀드 간 주식대여 거래를 주선해주고 수수료 수익을 얻는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