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팀은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다. 졸전의 연속이었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칫 나락으로까지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경기력만이 아니었다. 한때 아시아 최강으로 꼽혔던 대표팀에 내분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축구계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모두를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리더 자격이 없다.”
엔트리 탈락의 표면적 이유는 허벅지 부상. 하지만 일부 유럽파 선수들이 해외파보다는 국내파를 중용해온 전임 최강희 감독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루머가 파다했던 상황이라 이는 최 감독에 대한 반발로 비쳐졌다. 논란은 커졌고, 이에 기성용은 즉각 교회 설교의 일부를 올린 것이라고 개운치 못한 해명을 했다. 그는 홍명보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선임됐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들이 착용한 모자에는 영문 ‘M’과 ‘B’가 새겨져 있어 ‘MB’가 홍명보 감독의 이니셜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여론은 반반이었다. “오해 하지 말라”는 기성용의 해명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꺼져가던 불씨는 이후 전북 현대로 돌아간 최 감독이 7월 초 몇몇 스포츠 매체들과 인터뷰를 통해 “자기표현이 확실한 선수가 되어야 한다. 뉘앙스를 풍겨 논란이 될 만한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발언을 남기면서 다시 점화됐다. 이에 기성용은 7월 3일 다시 팬 카페에 글을 올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계정을 다 삭제했다. 여러 분과 소통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많은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오해를 샀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측면 수비수 윤석영(퀸즈파크레인저스)이 등장했다. 최 감독이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농담 삼아 “수비수들의 혈액형은 B형이 좋다”고 한 것에 대해 윤석영은 “2002한일월드컵 4강과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 수비수들은 대부분 O형이다. 심지어 수비에 탁월한 미드필더 박지성도 O형”이라는 글을 남겼다.
엄청난 질타는 당연한 수순. 최 감독을 비난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대부분 축구 대선배에 정면 대응한 새까맣고 어린 제자들에게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깜짝 놀란 윤석영은 곧장 “최 감독님께서는 날 A매치에 데뷔시켜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다시 글을 남겼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파장이 커진 뒤였다.
기성용이 SNS 논란이 일어난 직후 훈련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스완지 공식 트위터
① “고맙다. 내셔널리그 같은 곳에서 뛰는데 대표팀 뽑아줘서.”
② “쿠웨이트전은 나랑 (박)주영이 형의 독박 무대가 되겠군. 잘하면 본전, 못하면 아주 씹어 드시겠네.”
③ “소집 전부터 갈구더니 이제는 못 하기만을 바라겠네. 재미있네.”
④ “사실 전반부터 나가지 못해 정말 충격 먹고 실망했는데, 이젠 모든 사람들이 느꼈을 거다. 해외파의 필요성을. 우릴 건들지 말아야 했고, 다음부터는 그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첫 번째 글은 최 감독이 과거 “스코틀랜드는 팀 간 격차가 크다. 셀틱을 제외하면 내셔널리그 수준이 아닌가?”라고 한 발언을, 나머지 셋은 쿠웨이트전을 전후해 올라온 글이었다. 대표팀 사령탑을 향해 그토록 원색적인 조롱을 남긴 선수가 없기에 축구계 일각에선 기성용을 사칭한 계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성용은 5일 본인의 계정임을 시인하고 “치기 어린 저의 글로 상처가 컸을 최강희 감독님께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무지 용납받지 못할 행동을 한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다던 대표팀도, 태극마크도, 브라질월드컵도 모두 물 건너갈 수도 있다.
기성용은 8세 연상의 여배우 한혜진과 최근 결혼식을 올리며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런데 출국한 지 불과 이틀여 만에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물론 기성용이나 윤석영 외에도 과거 한국 축구에는 몇 차례 SNS 논란이 나온 적이 있었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인천에서 뛰다 대표팀에 발탁됐던 유병수는 실전에 교체 투입됐다가 다시 교체 아웃된 상황을 놓고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정말 못 해먹겠다”는 글을 남겼다가 폭탄을 맞았고, 베테랑 노병준(포항 스틸러스)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도중, 원색적인 표현을 썼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그래도 기성용이 휘말린 상황에 비하면 어린 아이 장난에 불과할 정도다.
홍 감독은 ‘팀’을 깰 수 있다는 이유로 SNS에 고운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치기로만 보기에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몇몇 미꾸라지들의 행태로 대표팀 내분설은 ‘루머’가 아닌 ‘실체’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도자는 차치하고 선배조차 존경하지 않고, 선수들은 스스로 분열되고, 갈기갈기 찢어진 대표팀의 모습은 암울한 한국 축구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