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에 불과한 클레이튼 커쇼는 자선활동을 펼치는 등 모범적인 사생활로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위키피디아’(영문)를 보면 ‘(커쇼는 고교시절인) 2006년 13승 무패, 평균자책점 0.77, 139탈삼진(64이닝)을 기록했다. 저스틴 노스웨스트 고교와의 플레이오프게임에서는 전원 탈삼진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고등학교 야구라고 해도 퍼펙트게임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전원 삼진이라니 기네스북도 놀랄 기록이다. 이것이 국내 한 신문을 통해 와전되면서 ‘커쇼 27삼진 신화’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정보다. 커쇼는 해당경기에서 15명의 타자만 상대했다. 경기가 10-0 5회 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당시 투구수는 73개였고, 커쇼는 타석에서 홈런을 치기도 했다. 기록의 의미가 조금 축소됐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커쇼는 그해 <USA투데이>로부터 ‘올해의 고교 야구선수’로 선정됐고, 게토레이 내셔널 플레이어의 야구부문 수상자가 됐다. 그리고 그해 MLB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번째로 LA 다저스의 지명을 받았다.
커쇼(왼쪽)와 NFL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활동하고 있는 매튜 스태퍼드의 어린 시절. 이들은 둘도 없는 절친이다.
192㎝, 99.7㎏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커쇼는 1988년 3월 19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음악가인 아버지 크리스와 어머니 매리언(그래픽디자이너) 사이에서 태어났다(참고로 커쇼의 아버지는 지난 4월 28일 작고했고, 커쇼는 장례식 참석 후 예정된 등판일정을 소화했다). 부모는 커쇼가 열 살 때 이혼했고, 매리언 혼자 커쇼를 키웠다. 싱글맘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지만 매리언은 커쇼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부촌으로 유명한 하이랜드파크에서 살았다. 이 동네는 베벌리힐스를 설계한 사람이 도시계획을 맡았고, 가구의 평균 연수입은 20만 달러가 넘었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하고, 당연히 ‘커쇼네’처럼 싱글맘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어린 시절 서머캠프에서 커쇼를 가르친 켄 거스리 코치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커쇼는 그 지역사회에서 검은 양(black sheep)이었다”고 비유했다. 고교 졸업반이 돼서야 뒤늦게 1997년형 포드 중고차를 얻은 커쇼도 “내 차는 렉서스SUV로 가득 찬 학교 주차장에서 정말 볼품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나이에 비해서는 무척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는 커쇼는 어린 시절 이런 환경을 잘 이해했다.
“커쇼가 12세 때 차 안에서 갑자기 빤히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어요. ‘엄마, 우리 부자지? 그런데 여기 하이랜드파크만큼은 부자가 아니지, 그렇지?’라고요. 어린 나이지만 커쇼는 일찌감치 녹록지 않은 가정환경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머니 매리언의 회고다.
매리언은 커쇼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심지어 비싼 사립학교를 다니게 했다. 물론 도중에 도저히 감당이 안 돼 공립학교로 옮겼지만 말이다. 어쨌든 매리언의 고민은 노상 커쇼의 교육을 위한 돈 걱정이었다. 이는 2006년 드래프트 후 사이닝 보너스로 230만 달러를 받으면서 비로소 해결됐다.
가식이 없고, 겸손한 커쇼의 성격도 이러한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커쇼는 “어떤 것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대한다. 이런 내 성격은 내가 자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저스의 댈러스 지역 스카우트 캘빈 존스가 밝힌 일화도 하나 있다. “드래프트 후 내가 정말 놀란 것이 하나 있다. 사이닝 보너스를 받은 후 어떤 차를 사고 싶냐고 물었는데 커쇼는 F-150픽업(값비싼 스포츠카나 명차가 아니라 실용적인 차)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이 정도면 멘탈은 됐다고 생각했다.”
# 별명, 절친, 등번호
커쇼의 결혼식과 잠비아 자선 활동 모습.
이런 커쇼는 미국에서는 ‘공공의 적 1호’로 불린다. 빅리그 승격 첫 해 시범경기에서 엄청난 커브를 선보이자 다저스의 레전드인 1인해설자 빈 스컬리가 “Public Enemy NO.1”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제 상대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으니 별명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어머니 덕에 스타플레이어를 많이 배출하기로 소문난 하이랜드파크에서 자란 커쇼는 유명한 친구들이 다수 있다. 특히 NFL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프랜차이즈 쿼터백 매튜 스태퍼드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초·중·고 동창으로 어린 시절 풋볼, 야구,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종목을 함께하면서, 야구에서는 커쇼가 투수, 스태퍼드가 포수를 맡았다. 참고로 커쇼는 고교졸업 후 당초 지금의 아내인 엘렌이 진학하는 텍사스 A&M 대학으로부터 장학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드래프트에서 뽑히는 바람에 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반면 절친 스태퍼드는 조지아 대학에 진학한 후 2009 NF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디트로이트로 갔다. 초·중·고 단짝친구가 미국 메이저 스포츠리그에서 대스타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등번호 22번에도 뼛속까지 ‘텍사스 사나이’인 사연이 깃들여 있다. 커쇼는 학창시절 텍사스 레인저스의 1루수 윌 클락을 가장 좋아했다. 그에 대한 오마주로 그의 번호를 지금 달고 있는 것이다. 커쇼는 지금도 매년 모교를 방문할 정도로 댈러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 몸보다 더 강한 멘탈
커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2010년 12월 4일 결혼한 아내 엘렌(멜슨)과 그 집안의 영향이 컸다. 커쇼는 엘렌을 중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졸업반이 되면서부터다. 그때까지 둘은 이성친구가 없을 정도로 순진했다. 둘의 연애는 엘렌의 할아버지 에드 멜슨이 가족여행에 커쇼를 초청하면서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에드 멜슨은 지금도 커쇼에게는 친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어쨌든 원래 독실했는데 아내 덕에 더 독실해진 커쇼의 신앙심은 대단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후 ‘아이 엠 세컨드(I am Second)’라는 기독교 간증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커쇼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본다. 그들에게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는 없다. 그저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종교 덕인지 커쇼는 멘탈이 훌륭하다. 아내 엘렌은 “커쇼는 아마도 여러분들이 만난 사람 중 가장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예컨대 레스토랑에서 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 스타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능한 피하려고 노력한다. 옆에서 지켜보면 재미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커쇼도 “신앙은 나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이 돼 버렸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신을 위한 것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커쇼는 프로정신이 대단하고, 동료의식도 뛰어나다. 그리고 성실하다. 젊은 나이에 대성한 많은 선수들이 성공에 취하는 것과는 달리 커쇼는 시즌 중 매일 체력단련을 하는 등 엄청난 훈련량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게임 최고의 상태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커쇼가 자선 활동을 하던 잠비아에서 투구 연습을 하는 모습.
일찍이 아프리카 잠비아의 고아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엘렌은 2010년 신혼여행지로 호화휴양지 대신 잠비아를 택했다. 그리고 커쇼는 이때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 커쇼는 “아프리카는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요건만 갖춰져도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다. 이것은 그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라고 말했다.
첫 방문 후 커쇼는 엘렌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호프’라는 잠비아 고아소녀를 위해 고아원을 지어주겠다고 결심했다. 호프는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했고, 자신도 감염자였다. 커쇼는 행동에 나섰다. 2011시즌 스트라이크 아웃 1개 당 100달러를 적립했다. 그리고 각종 상을 받을 때마다 상금의 대부분도 내놓았다.
2011시즌 후 고아원(호프의 집)이 세워졌고, 아내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룬 ‘ARISE’라는 책도 펴냈다(2012년 1월). 커쇼는 지금도 겨울이면 약 한 달 동안 잠비아에 머물며 자선활동을 펼친다. “이들은 야구도, 메이저리그도 모른다. 여기(잠비아) 오면 내가 축구선수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아프리카는 축구 인기가 높다).” 커쇼의 아프리카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커쇼는 2012년부터는 아예 ‘커쇼의 도전(kershaws-challenge.com)’이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잠비아는 물론 LA와 댈러스 등에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해 선행을 베푼 메이저리거에게 주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했다. 커쇼는 1년 전 수상한 사이영상보다 이 상이 더 뜻깊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고의 기량과 함께 모범적인 사생활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던 마이클 조던(농구)과 타이거 우즈(골프)는 이혼, 도박 등으로 이미지의 빛이 많이 바랬다. 그 자리를 불과 25세의 젊은 야구스타가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