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4월 16일 대전구장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시즌 14번째 경기만에 첫승을 거둔 모습. 한화는 개막 13연패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웠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그러나 스프링캠프에서 두 팀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며 과연 한화가 NC보다 전력이 나은지 의문이 들었다. 투수진부터 그랬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한화는 3명의 핵심투수가 사라졌다. 류현진(다저스)은 미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박찬호는 은퇴했으며, 양훈은 입대했다. 거기다 한화는 시즌 종료 후, NC에 특별지명선수로 핵심 불펜투수 송신영을 내준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좌완 ‘믿을맨’ 박정진은 어깨부상으로 제대로 훈련조차 하지 못했다.
타선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지난해 한화에서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1루수 김태균이 유일했다. 나머지 타자들은 대부분 2할5푼 이하였다. 타선이 보강되긴 했다. 김태완이 공익근무, 정원석이 경찰청에서 제대했다. 그러나 김태완은 공익근무로 2년 동안 실전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고, 정원석은 경찰청에서 타격은 인정받았으나 수비에선 ‘느린 발’로 ‘반쪽 선수’란 평을 들었다.
문제는 한화 전력이 좋지 않은 데도 전력보강은 전무했다는 점이다. 한화 관계자는 “지난 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선수)를 잡으려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고 강조하며 “하지만,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화 부진의 복합적인 이유들
한화는 전반기를 22승 1무 51패 승률 3할1리로 마감했다. 8위 NC에 무려 6경기나 뒤진 부동의 꼴찌였다. 팀 평균자책 5.67와 팀 타율 2할5푼7리 역시 리그 최하위로, 성적 지표 가운데 어느 하나도 중위권 이상이 없었다. 심지어는 팀 병살도 76개로 압도적인 리그 1위였다.
밑바닥이긴 흥행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4번(청주구장 포함)이나 기록한 만원관중은 올 시즌 전반기엔 2번밖에 없었다. 한화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태다. 인터넷에서 김응용 감독 퇴진 운동을 벌일 정도다. 김인식, 한대화 전임 감독 때도 팀 성적은 나빴지만, 지금처럼 팬들이 감독 퇴진 운동을 벌인 적은 없었다.
지난 시즌 중 감독까지 갈아치우며 새출발을 다짐했던 한화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배경은 몇 가지로 집약된다. 먼저 애초부터 한화 팀 전력이 꼴찌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모 팀 수석코치는 “솔직히 김태균, 최진행, 대니 바티스타, 송창식을 제외하면 누가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겠느냐”며 “삼성처럼 전력이 강한 팀이라면 수비가 약한 최진행과 기복이 심한 바티스타는 주전으로 뛰기 힘들다”고 평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선수층도 문제다. 다른 팀만 해도 입단 2~4년차 젊은 선수들이 주전을 꿰차거나 마운드의 핵심이 된다. 그래야 신구 조화를 이루고, 체력적으로 부담도 덜하다. 하지만, 한화는 몇 년째 그 선수가 그 선수다. 시즌 전 “노장 선수들보다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천명한 김응용 감독이 6월 이후 강동우, 김경언, 추승우 등 베테랑 선수들을 다시 기용하는 것도 김 감독 말마따나 “실력 있는 유망주가 좀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모 구단 2군 코치는 “한화 2군을 보면 고교야구팀을 보는 것 같다”며 “훈련량이 다른 팀의 몇 배는 된다”고 혀를 내둘렀다. 덧붙여 이 코치는 “팀 분위기도 영락없는 고교야구팀”이라며 “고교 때나 접했던 추억의 기합을 가끔 서산구장에서 보곤 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한화 2군 수장은 지난해까지 천안북일고 사령탑이던 이정훈 감독이다.
구단의 미온적인 구단 운영도 아쉬움이다. 김 감독은 시즌 전부터 전력보강을 위해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선발요원과 젊은 투수들을 리드할 베테랑 포수, 발빠른 외야수를 구하는 게 목적이었다. 김 감독의 제안에 몇몇 팀에선 관심을 보였다. 어느 팀은 “유망주 투수를 내주면 내외야 백업요원을 서너 명 얹혀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왔다. 또 어떤 팀에선 “당신 팀 주축타자와 우리팀 주전급 선발투수와 야수를 1 대 2로 바꾸자”는 반응을 보였다.
현장은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프런트가 주저했다. “힘들게 스카우트한 미래의 에이스를 내줄 수 없고, 해당 주축타자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라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김 감독 입장에선 구단의 처사가 불만일 수 있었다. 가뜩이나 구단은 류현진의 막대한 포스팅비를 전력 보강에 쓰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그래서일까. 야구계에선 “김 감독이 FA 보강도, 트레이드에도 미온적인 구단에 몹시 불만이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구단의 결정이 그렇다면 따르는 게 순리”라며 “삼성 사장까지 지낸 내가 왜 구단의 마음을 모르겠느냐”는 말로 구단과의 불화설을 일축했다.
왼쪽부터 장종훈 코치, 정민철 코치, 강석천 코치.
김 감독은 여전히 구단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성적 부진과 관련해서도 일체 변명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여론은 더 악화하는 실정이다. 전반기가 끝날 무렵부터 언론은 ‘처음부터 한화와 김 감독은 잘못된 만남이었다’며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한 지상파 해설가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던 김 감독도 이젠 한발 뒤로 물러나 현재 팀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후반기엔 최소한 ‘노력하고 있다’라는 인상 정도는 풍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김 감독이 칼을 빼들었다. 18일 한화는 ‘1군 김종모 타격코치, 송진우 투수코치, 오대석 수비코치, 조경택 배터리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고 장종훈 타격코치, 정민철 투수코치, 강석천 수비코치, 전종화 배터리코치가 1군으로 승격했다’고 발표했다. 김 감독은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고심 끝에 1, 2군 코치의 보직을 바꾸기로 했다”며 “선수들이 이에 자극받아 후반기엔 좀 더 분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코칭스태프 교체로 팀 분위기가 살아난다면 다행이다. 야구계는 “코칭스태프에 불신감이 팽배한 선수들이 이번 코치진 교체로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요법이 얼마나 팀 성적 상승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한화 선수들의 개별 능력이 다른 팀보다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야구계는 후반기부터라도 한화가 승리에 집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직 감독 K 씨는 “한화가 1승에 집착해 전반기처럼 무리수를 뒀다간 더 큰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젊은 선수들을 경기에 출전시키며 경험을 쌓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약 이 같은 극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김 감독은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장에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 감독에 올라 한화를 망친 패장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감독은 “후반기엔 성적보다 팀 리빌딩에 주력하겠다”며 “원래 복안대로 내년 시즌에 초점을 맞춰 팀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최강민 스포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