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한시도 쉬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눈이 빠지도록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일만 하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사장님은 직원들의 ‘딴 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K 씨(여·26)는 회사에만 가면 답답하다. 꼼짝없이 앉아서 일만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니홈피나 트위터를 통해서 가끔씩 외부와 소통하고 스트레스를 푸는데 회사에서는 모든 게 전면 금지예요. 메신저는 물론이고 모든 온라인 활동이 감시당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감시 프로그램으로 쓰는 것이 있는데 이걸 깔면 PC에서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랑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 접속시간까지 다 나오거든요. 거의 모든 데이터가 저장돼요. 인터넷 게임이나 컴퓨터에 깔린 오락 같은 건 꿈도 못 꾸죠. 그 감시 프로그램은 제가 종료시킬 수도 없고 삭제도 못하게 돼 있어요. 어찌어찌 컴퓨터 기술을 총동원해서 없앤다 해도 그 프로그램 없이는 아예 인터넷이 안 되게 해놓았다니까요.”
때문에 K 씨는 사무실만 오면 침울해져서 조용히 있게 된다. 업무시간을 많이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일을 하다가 맡은 업무를 다 못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는 “마치 감옥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직원을 믿지 못하는 회사에 스스로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IT 회사에 근무하는 P 씨(28)도 인터넷 감시 프로그램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인터넷 사용 때마다 계속 신경 쓰이는 데다 주로 메신저로 지인들과 연락을 하기 때문에 외부 메신저 사용이 간절해져 묘안을 생각해 냈다.
“감시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기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다운 받았어요. 그리고 설치를 했죠. 근데 얼마 뒤 사내 메일을 열어보니 ‘귀하가 사용하신 프로그램은 회사의 보안서약에 위배되는 행위로 제재하니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조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경고 메일이 왔더라고요. 징계처리까지 될 수 있는 사항이라 깜짝 놀랐죠. 프로그램을 다운 받은 다른 직원 얘길 들어보니 마찬가지였어요. 그 프로그램을 깔면 ‘자랑스러운 ××사 직원은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대요. 누가 몇 번 IP를 사용하는지 네트워크 관리자라면 다 아니까 이젠 아예 시도도 안 하고 있어요.”
사무실이 아닌 외부활동이 많은 직장인도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업을 하는 L 씨(43)는 회사의 감시활동에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영업직의 특성상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처럼 일일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진 않죠. 그렇다고 해서 업무에 소홀한 건 아니었습니다. 명예퇴직을 거절하고 버티고 있었더니 지점 관리 업무를 배정하고 폐지됐던 업무일지도 작성하게 하더군요. 그래도 나름대로 허튼짓 안 하고 업무시간 내에 부지런 떨었고 업무일지도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점에서 제 방문 기록을 저 몰래 회사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방문시간과 방문날짜를 보고하던 직원이 아니었으면 계속 몰랐을 겁니다. 아는 순간 얼마나 배신감이 느껴지던지 말로 다 못합니다.”
인터넷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던 J 씨(여·30)도 ‘자유’를 박탈당했던 경험이 있다.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싫어 선택한 직업이지만 외부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누구를 만나 어떤 취재를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기사 아니겠어요? 그런데 사장님은 기사는 물론이고 기자들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구체적인 활동일지를 적길 원했어요. 어디에서 몇 시에 누굴 만나서 무엇을 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매일같이 보고해야 했죠. 이 일지가 조금이라도 성의가 없으면 바로 호출이었어요. 나중에는 기사보다 기억을 더듬어서 이 일지를 작성하는 게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때가 있었죠. 너무 성가셔서 취재를 나가기보다 차라리 안에서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가 많았어요. 발로 뛰지 않은 기사니 좋을 턱이 없죠.”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J 씨는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매일 일기 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못할 짓이라고. 하지만 앞의 경우들은 M 씨(29)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가 근무했던 회사는 지독할 정도로 감시에 집착했단다.
“직원이 20여 명인 제조업체였어요. 공장 규모가 2000㎡(약 600평) 정도 되는데 CCTV만 15대였어요.
사무실에도 2대가 있었죠. 사장님은 외국에 나가서도 노트북으로 감시를 하더군요. 수시로 접속해서 위치를 조정하면서 손도 흔들어 보라고 하는 거예요. 제조회사이기에 값비싼 기계가 있으니 그렇다고 하면 더 안전하고 철저한 보안회사에 맡기면 될 텐데 그게 아니니까 근무하면서도 영 불편하더라고요.”
Y 씨(여·27)의 회사도 CCTV 때문에 말이 많았다. 작은 기업에 근무했던 Y 씨는 사장실에서 CCTV만 들여다보는 사장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화면을 보다가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바로 나와서 이것저것 지적을 해요. 일하는 책상, 컴퓨터 모니터까지 다 보이니 감시 프로그램이 굳이 필요 없어요. CCTV 화질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사장은 하루 종일 그걸 복구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어요. 전화국부터 인터넷 회사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원상태로 회복시켰죠. 다른 여직원들도 왠지 계속 사장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 나쁘다고 원성이 자자했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장한테 찍히면 결과는 빤하잖아요.”
마케팅 회사 직원 N 씨(35)는 “아직도 그렇게 감시하는 회사가 있다는 게 놀랍다”며 “직원이 맘 편하게 일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그런 쓸데없는 데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대는 창의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직원 감시에 열을 올리는 사장님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