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세무조사 축소’ 발언에도 기업들이 느끼는 세풍은 여전히 강력하다. 최준필 기자
신세계의 경우는 한 고비를 넘긴 듯 보이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7월 22일 신세계 이마트의 노조탄압 등 부당노동행위 의혹과 관련해 최병렬 전 이마트 대표이사 등 17명에 대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이번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받아 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리해 ‘면죄부’를 준 셈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검찰의 판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노동청은 정 부회장의 지시·개입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검찰은 노동청의 판단에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란 게 검찰 주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노동청에서 관련기록을 넘겨받아 보강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청이 정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데 대해 ‘재벌총수 일가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터여서 여론의 향배도 변수가 되고 있다.
더욱이 직원 불법사찰 문제에 이어 ‘빵집 특혜’ 의혹도 걸리는 부분이다. 공정위는 7월 25일 베이커리업체인 신세계SVN을 부당 지원한 데 관여한 혐의로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공정위가 지난해 9월 신세계SVN과 조선호텔의 판매수수료를 낮춰 부당지원한 신세계, 이마트, 에브리데이리테일 등 신세계 계열 3개사에 과징금 40억 6000만 원을 부과하면서 일단 행정처분이 종료된 사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찰이 공정위에 고발을 해달라고 요청, 수사가 개시된 것이다.
조세피난처에 대한 사정기관들의 조사도 기업 사정 정국의 큰 변수다. 검찰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후 최대 수백억 원을 역외탈세한 혐의로 대기업 2곳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과 관세청 산하 세관이 공조해 두 대기업이 해외로 빼돌려 탈세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국세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 7월 23일에는 “올해 세무조사 비중을 결국 줄이기로 했다”고 밝혀 경제활성화 기조 쪽에 힘을 실어줬다. 매년 시행하고 있는 1만 9000여 건의 세무조사 건수 중 1000~1500건을 줄이기로 했다. 국세청은 그동안 경기 불황으로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의 주요 세목 세수 실적이 좋지 않자, ‘노력 세수’의 일환인 세무조사를 통한 재정 확보에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른바 ‘마른 수건 짜기’가 주된 흐름이었던 기조와는 사뭇 대조적인 태도다.
국세청의 ‘립서비스’에도 기업들이 느끼는 ‘세풍’은 여전히 강력하다. 롯데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세청은 올해 매출 500억 원이 넘는 기업 5800여 개 가운데 기업 1100여 개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 중소기업과 프랜차이즈본부들이 세무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게다가 예년과 달리 세무조사 인력이 배로 늘어나고, 수년간 진행된 장부를 샅샅이 뒤지는 등 “조사강도가 다르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겉으론 국세청이 몸을 낮추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기불황으로 세수부족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국세청이 마냥 기업들이 편하라고 앉아있겠느냐”는 얘기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