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 없었다면 큰일 날 뻔”
2군을 전전하다 14년 만에 리그 최고의 ‘좌투수 킬러’로 우뚝 선 넥센의 오윤.
골수 야구팬 사이에서도 오윤은 덜 알려진 선수다. 2000년 프로 무대를 밟고서 올 시즌까지 14시즌을 뛴 베테랑이지만, 알려진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그가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할 때만 해도 야구계는 그를 ‘제2의 심정수’로 부르며 많은 기대를 걸었다.
실제로 그는 천안북일고 시절 ‘거포’ 포수로 유명했다. 큰 체구와 차분한 성격으로 투수리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오윤을 현대는 2차 2순위로 지명하며 1억 1000만 원의 계약금을 안겼다.
오윤은 입단 당시를 회상하며 “프로에 들어오면 당장 주전 포수가 되고, 스타 선수가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프로의 쓴맛을 보는 덴 오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즈음 현대 주전포수는 박경완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로 불리던 박경완의 벽은 높았다. 오윤은 2003년까지 2군에서만 뛰다가 입대했다.
제대 후라고 달라진 건 없었다. 2005년 팀에 복귀했을 때 이번엔 주전포수가 베테랑 김동수였다. 그해 오윤은 1군에서 9경기를 뛰었지만, ‘잘해야 한다’는 극심한 부담감에 시달리며 고작 1할 타율을 기록하고 2군으로 내려갔다. 외야수로 전향해서도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2010년까지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해마다 한두 번씩 잠시 1군을 여행하고, 다시 2군으로 돌아오는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다.
그즈음 오윤은 ‘야구를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준 이가 아버지였다.
“야구를 처음 시작하던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는 내 유일한 팬이셨다. 비록 2군에서 오래 뛰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나를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셨다. 아버지께 은퇴 이야기를 꺼내자 ‘그만둘 때 두더라도 후회 없이 한 시즌을 뛰고서 그만두라’는 조언을 들려주셨다.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다시 훈련에 매달렸다.”
2011년 그는 57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4푼6리, 2홈런, 18타점을 기록했다. 주로 왼손 투수일 때 대타로 출전해 거둔 성적이었다. 그해 그는 결혼에 골인하며 다시 배트를 힘껏 쥐었다.
“솔로일 땐 ‘열심히 하면 다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니까 아니었다. 내가 야구를 못하면 아내와 태어날 아기가 궁핍하게 살 게 뻔했다. 갑자기 절박한 감정이 들며 나도 모르게 훈련에만 매진하기 시작했다.”
절박함으로 무장한 오윤은 지난해 대타로서 가능성을 재차 확인한 뒤 올 시즌 주전 외야수로 자릴 잡았다.
7월 25일 기준, 그는 타율 3할4푼6리, 16타점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좌투수 상대 타율 4할2푼4리로 리그 최고의 ‘좌투수 킬러’로 우뚝 섰다.
오윤은 “지난해만 해도 집에 들어오면 아내가 ‘어떤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는데 올해는 웃으며 ‘여보 고생했어요’라고 반겨준다”며 “14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박정배 “딸이 나를 깨웠다”
전반기를 7위로 끝낸 SK 이만수 감독은 낙담보단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사실 SK는 전반기 내내 약한 불펜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5회까지 앞선 33경기에서 리그 평균보다 많은 5패를 한 것도 뒷문이 흔들린 까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5월 초 ‘마무리’ 박희수가 복귀하고, ‘불펜 마당쇠’ 박정배가 6월 초 1군에 합류한 것이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이는 박정배다.
박정배는 1982년생으로, 서른이 넘은 투수다. 공주고-한양대를 졸업하고서 2005년 두산에 입단했다. 한양대 시절 빠른 공과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그를 두산은 “떡잎이 보이는 유망주”라며 2차 5순위로 지명했다.
그해 시범경기에서 박정배는 평균자책 0의 호투를 펼쳤다. 박정배는 “생각보다 프로의 벽이 높아 보이지 않던 때”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박정배의 떡잎은 더는 자라지 못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1승 1패 평균자책 9.01를 기록하며 ‘2군에서나 통할 선수’라는 혹평을 받았다. 2006시즌이 끝나자 박정배는 조용히 입대했고, 2009년 다시 마운드에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2011년까지 그는 평균자책 6점대 이상의 난조를 보였고, 결국 두산은 그에게 ‘재기 불능’ 판정을 내렸다.
두산을 나와 뒤를 돌아봤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어린 딸과 아내였다. “두산에서 방출되고 한참동안 집에 있었다. 그런 날 보고 하루는 딸이 ‘아빠 왜 야구장에 안 가?’하고 물었다. 거짓말처럼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껏 날 위해 야구하고 있던 거였다. 딸의 말을 듣고부터 ‘이제 가족을 위해 뛰자’고 결심했다.”
박정배는 SK를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마침 주력 불펜투수들이 부상으로 시달리던 SK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박정배를 영입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난해 박정배는 37경기에 출전해 4승 3패 3홀드 평균자책 3.14의 성적을 거뒀다. 처음엔 패전투수였으나 호투를 이어가며 필승조 멤버가 됐다. 이만수 SK 감독은 “박정배가 없었다면 지난해 한국시리즈 진출은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우리 팀에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기뻐했다.
올 시즌 그는 부상으로 5월까지 재활에 매달렸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다짐을 무너트릴 순 없었다. 박정배는 “재활이 힘들 때마다 가족을 떠올렸다”며 “재활 기간 중 약점을 보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밝혔다.
6월 16일 오랜만에 1군 무대를 밟은 박정배는 전반기가 끝날 때까지 11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5홀드 평균자책 1.76으로 호투하며 SK 불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 감독은 “후반기 박정배-박희수 콤비가 많은 승리를 합작하길 기대하고 있다”며 “박정배의 성공을 거울삼아 시즌 종료 후,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투수들이 누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 무명 생활 이겨낸 정훈
“내가 프로 스카우트라고 해도 날 뽑긴 어려웠을 거다. 타격, 수비는 그런대로 좋았는데 또래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현대에 입단했을 땐 자신감이 있었다. 열심히 하면 뭐든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2군엔 그보다 주목받는 내야수가 2명 있었다. 강정호(넥센)와 황재균(롯데)이었다.
“1군은 고사하고, 2군에도 나보다 야구 잘하는 선수가 많았다. 특히나 (강)정호와 (황)재균이는 같은 야구선수인 내가 봐도 정말 잘하는 선수들이었다. 두 친구를 꼬드겨 술을 마셔도 나만 힘들지 두 선수는 다음날이면 펄펄 날았다. 여기다 지석훈(NC) 선배도 내야수로 뛰면서 넥센 2군 내야 주전 경쟁이 1군 못지않았다.”
특급 유망주에 밀려 정훈은 2군 경기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1년 만의 방출. 정훈은 입대를 결심했다.
“상무, 경찰청 야구단은 꿈도 꾸지 못했다. 빨리 입대해 제대할 병과를 찾다보니 81㎜ 포병이 눈에 띄었다. 주위에선 ‘차량으로 포를 운반하기 때문에 힘들 게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작 입대하니 죄다 포를 어깨에 지고 다녔다.”
정훈은 제대 후 야구와 인연을 끊을 생각이었다. 원체 야구공을 잡은 지 오래된 데다 제대한 그를 받아줄 구단도 없었다. 그때 우연히 찾은 부산 사직구장에서 그는 동기생 강정호와 황재균의 플레이를 본다.
“사직구장에서 넥센과 롯데의 경기가 열렸다. 어느덧 정호는 넥센 붙박이 유격수, 재균이는 롯데 주전 3루수였다. ‘친구들은 저기서 멋지게 뛰는데 나는 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다시 도전해보자’고 결심했다.”
정훈은 모교인 마산 양덕초교를 찾았다. 후배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개인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던 2010년 기회가 찾아왔다. 롯데에서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된 것이다.
“용마고 박동수(현 NC 스카우트 팀장) 감독의 권유로 롯데 2군 훈련장으로 테스트를 보러갔다. 그날 수비 테스트를 봤는데 결과가 엉망이었다. 10개의 펑고 가운데 1루수를 보던 박정태 코치님 글러브에 제대로 들어간 공이 2개밖에 없었다. 속으로 ‘아, 떨어지겠구나’ 싶었다.”
현실은 반대였다. 뜻밖에도 합격이었다. 롯데 2군 코칭스태프는 “송구가 부정확한 건 긴장했던 탓”이라며 “잘만 다듬으면 백업요원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해 난생 처음 1군 무대를 밟은 정훈은 이듬해 33타수 10안타 타율 3할3리로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올 시즌 초반 부상으로 빠진 베테랑 조성환의 대역으로 주전 2루수를 맡으며 몰라보게 성장했다. 팀이 치른 75경기 가운데 63경기에 출전한 정훈은 전반기에 타율 2할7푼4리, 2홈런, 15타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정훈은 “힘들 때마다 큰 힘이 돼주는 선배가 있다”며 “그 선배를 봐서라도 올 시즌 꼭 주전선수로 도약하겠다”고 다짐했다. 정훈이 말한 ‘큰 힘이 돼주는 선배’는 다름 아닌 이대호(오릭스)였다.
“(이)대호 형이 일본에서 뛰는 요즘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격려해준다. 한번은 대호 형한테 ‘형님, 요즘 힘들어 죽겠습니다’라고 했다가 크게 혼났다. 대호 형이 ‘네가 언제부터 주전 선수였다고 힘이 드냐’며 ‘그럴 때일수록 내색하지 말고, 참고 견디라’고 조언해줬다.”
정훈은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은 상황에서도 좀체 쉬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선수에겐 평범한 한 타석이 내겐 오랫동안 동경하던 꿈의 무대”라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타석에 서고, 진심을 다해 스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윤, 박정배, 정훈처럼 자신의 한계를 딛고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하는 선수가 많아질수록 프로야구는 팀 성적을 떠나 감동의 무대로 승격할 것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