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 전 KIA 감독이 프로야구 제10구단 KT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일요신문DB
7월 하순. 기자에게 한 감독이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KT 감독 선임에 관심이 많았다. 현직 감독이 다른 구단 감독 선임을 두고 어째서 관심이 많은지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야구계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국내 프로야구는 감독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팀 색깔이 바뀌고, 성적까지 좌우된다. 여기다 코칭스태프의 대이동도 시작한다. 신생구단은 더하다. 야구계에서 “NC가 초대 사령탑으로 김경문을 선택했기 망정이지 다른 감독이었다면 지금 같은 성적과 흥행을 이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도 감독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독 선정을 앞두고 KT 수뇌부는 3명으로 감독후보를 압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군 지도자 K 씨와 야구해설가 Y 씨 그리고 조 감독이 유력 후보였다. KT는 3명의 후보에게 인터뷰를 청했고, 이 가운데 Y 씨와 조 감독이 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K 씨는 “뜻은 고마우나 지금 팀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조 감독은 7월 29일 KT 권사일 사장, 주영범 단장을 만나 인터뷰를 치렀다. 이 자리에서 조 감독은 기존 9개 구단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전망을 이야기하며 만약 감독이 된다면 ‘스피드한 야구’를 펼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KT 구단 수뇌부는 인터뷰 이후 초대 감독 적임자로 조 감독을 낙점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 감독은 2003년 SK 감독을 맡고서 하위권에서 맴돌던 팀을 그해 4위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현대와 3승 4패의 접전을 펼쳤다. 비록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조 감독 특유의 데이터 야구와 상대 허를 찌르는 변화무쌍한 작전은 현대 김재박 감독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SK 젊은 선수들의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 박정권, 박재상, 김강민, 임훈, 정상호, 송은범, 정우람 등 유망주들을 1군급 선수로 만들었다. 2007년 SK 신임 사령탑에 선임된 김성근 감독이 취임 일성으로 “조 전 감독이 팀을 잘 만들어놓은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조 감독은 2008년 KIA 사령탑으로 취임했을 때도 ‘성적과 육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2009년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주축선수였던 윤석민, 양현종, 손영민, 안치홍, 김선빈, 나지완 등은 조 감독의 눈에 띈 젊은 유망주들이었다.
조 감독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5년 1군에 진입했을 때 NC처럼 팀 골격이 잘 갖춰진 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조 감독은 “감독 취임식이 끝나면 전국을 돌며 직접 유망주를 물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1군 지도자가 발 벗고 유망주를 찾아다니는 건 한국 야구에선 생경한 장면이다. 그만큼 조 감독은 불필요한 권위를 고집하는 대신 신생구단의 연착륙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조 감독의 노력에도 KT가 NC처럼 1군 무대에 연착하기엔 불안한 변수가 많아 보인다. 먼저 신인 선수들의 질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은 “NC는 행운아였다”라고 말한다. 이유는 2011, 2012년 신인지명회의에 등장한 신인선수들의 실력이 꽤 좋았다는 데 있다. 한 스카우트는 “NC가 2년 동안 우선지명했던 노성호, 이민호, 윤형배, 이성민은 미래 가능성과 당장의 실력을 모두 갖춘 유망주들이었다”며 “그러나 현재 고 2, 3학년생 가운데 유망주라고 불릴 만한 재목이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기존구단이 신생구단에 1명씩의 선수들을 지원하는 특별지명에서도 KT는 다소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뭘까. 모 구단 운영팀장은 “지금 NC가 잘하는 건 유망주보단 특별지명을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은 중고참 선수들의 활약 덕분”이라며 “NC 성공이 내심 언짢은 기존 구단들이 특별지명을 ‘보호선수 20명 외 1명씩에서 25명 혹은 30명 외 1명’으로 늘릴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만약 보호선수가 늘어나면 KT의 선택권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기존 구단 입장에선 좋은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덜 뺐긴다는 장점이 있다.
조 감독은 “구단과 유기적 소통으로 선수단 구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KT가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하는 데 작은 밀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감독들 교체바람 부나
조범현 전 KIA 감독이 KT 초대 사령탑에 선임되며 야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 현직 코치는 “조 감독이 KT 사령탑이 되면서 프로야구 코칭스태프의 대이동이 예상된다”며 “코치뿐만 아니라 기존 구단 감독들도 교체 바람에 휩싸일 것 같다”고 예상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감독들의 물갈이다. KT의 감독 인터뷰 제안을 거절한 모 팀 2군 감독 K 씨를 두고 야구계엔 “K 씨가 올 시즌 종료 후, 1군 감독으로 승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 야구인은 “감독은 하늘이 내려주는 기회인데, 그 기회를 마다했다는 것 자체가 KT 감독만큼의 중요한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며 “올 시즌 부진한 그 팀의 1군 성적을 고려할 때 K 씨의 1군 감독 승격도 억측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감독의 화려한 부활과 배치되는 인물이 바로 선동열 KIA 감독이다. 2011년 선 감독은 조 감독의 후임으로 KIA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야구계는 “1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2번의 4강 진출을 일궈낸 조 감독을 KIA가 헌신짝처럼 버렸다”며 분개했다. 그러나 KIA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며 “선 감독이야말로 그 변화를 이끌 최적임자”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KIA는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올 시즌도 4위권 밖에 있다. 원체 팀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일부 KIA팬은 “조 감독 시절이 지금보다 나았다”며 이른바 ‘조 감독 명장설’을 주장하고 있다.
삼성 시절 선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코치는 “자존심 강한 선 감독이 올 시즌도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지 못한다면 초강수를 둘 수 있다”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