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신임 정국 책임론 등이 제기되고 총선이 다가오면서 청와대 참모들의 ‘줄사퇴’가 점쳐지고 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재신임 사태를 불러온 데 대한 쇄신 요구를 받고 줄줄이 물러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건 내각 역시 책임론에다 내년 17대 총선에 대비한 여권 내 ‘징발령’에 영향을 받아 상당수 각료들이 교체될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새 정부 출범 후 줄곧 소외감을 피력해 온 통합신당은 권력재편기를 맞아 영역을 크게 넓혀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면서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과 ‘청와대 전면개편론’을 제기해 권력지형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김근태 원내대표·천정배 의원 등의 움직임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신임 국면을 맞아 요동치고 있는 여권 내 권력지형 변화의 동력과 방향을 분석해 봤다.
여권 내 파워그룹 중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역시 정치권으로부터 ‘전면 개편’ 요구를 받고 있는 청와대. 이미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사표를 제출한 데 이어, 이 실장으로 대표되는 386그룹과 함께 청와대 참모진의 양대 축을 이뤘던 부산인맥(문재인 민정수석-이호철 민정1비서관 등) 주요 인사들도 곧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등 정치권 출신 참모들도 책임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이 실장의 사표 제출은 지난 17일 열린 통합신당 의원총회에서의 경질 요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경질의 필요성을 제기한 인사가 통합신당 내에서 노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읽는다는 천정배 의원이었다는 데서 파장이 컸다. 천 의원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 “청와대에서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꼭 경질해야 한다. 이 실세를 바꾸지 않으면 (쇄신의) 실효가 없다”며 이 실장을 겨냥한 ‘직격탄’을 날렸고, 이에 신기남 정장선 의원 등이 가세했다.
사실 정치권, 특히 여권 내에서 이 실장에 대한 퇴진 압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가장 최근의 경우는 지난 7월 하순 통합신당 김원기 이해찬 신계륜 의원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굿모닝 시티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동아일보> 보도로부터 비롯된 ‘386 음모론’ 논란 때다. 당시 박범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보도 과정에 간접적이나마 개입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와 밀접한 관계인 이 실장이 음모론의 ‘기획자’로 지목돼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용케 고비를 잘 넘겨온 이 실장이었지만 이번에는 국정 전반의 난조에 대한 책임과 썬앤문 금품 수수 의혹 등이 겹치면서 결국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 실장의 퇴진으로 청와대 요소 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이광재 사단’은 위기를 맞게 됐으며 실제 이중 상당수는 곧 청와대를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른바 ‘좌(左) 희정 우(牛) 광재’ 중 안희정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 아직 나라종금 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이어 이 실장마저 당분간 정치권 일선에서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높아 ‘386 정치’의 영향력은 급감할 수밖에 없게 됐다.
▲ 권력개편 회오리의 핵 김근태 원내대표(왼쪽)와 김원기 위원장. 이종현 기자 | ||
두 사람은 이 같은 상황이 도래할 것을 예견하고 지난 10일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기로 발표한 이후 사퇴에 대비해 주변정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당초 ‘최도술 사건’이란 돌출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내년 17대 총선 이후에도 청와대에 남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에 물러날 경우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미 김정길 통합신당 부산지부장은 “문 수석처럼 지명도 있는 인사가 부산에서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영입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동안 386그룹과 부산 인맥 사이에 끼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했던 문희상 실장과 유인태 수석도 아이러니하게 양대 그룹의 퇴진과 함께 물러날 확률이 높아졌다. 문 실장은 참모진 관리에 대한 최종 책임문제로, ‘엽기 수석’이란 닉네임으로 불려온 유 수석은 이미 정국현안과 관련해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던 데다 최근 정국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문 실장은 17대 총선에서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에서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보다 변동 폭은 적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각 역시 적지 않은 수의 각료가 교체되리란 전망이 시간이 지날수록 확산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청와대-내각 개편 시기를 “재신임 국민투표가 끝나는 12월 중순 이후”로 제시했지만 정치권의 분위기로 볼 때 재신임투표 자체가 물 건너 갈 확률이 높아지면서 ‘조기 개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조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고건 총리 등 관계장관들과 선거부정 방지대책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청와대와 내각이 권력재편기에서 ‘수세’ 국면에 몰려 있는 반면 통합신당측은 향후 여권 내에서 입지가 크게 넓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17대 총선을 불과 6개월 앞둔 현재 시점에서 여권 내 모든 역량이 선거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 청와대와 정부 개편을 ‘선거체제’에 맞게 주도하겠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통합신당측은 이와 관련, 천정배 의원 등을 총선 불출마를 전제로 청와대 핵심 포스트로 배치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각에도 당 출신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키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노 대통령과 김원기 창당주비위원장 간의 오찬회동에서 이들 문제에 대해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통합신당측은 또 영남권 총선사령탑에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부산)-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경남)-송철호 변호사(울산)-이재용 전 대구시장 출마자(대구)-추병직 전 건교부 차관(경북) 등을 선임, 신당연대 등 외곽 신당세력과의 연대문제 등에서 확고한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진로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청와대 386참모들을 대거 당에서 흡수해 수도권과 충청·호남권 등의 주요 거점지에 출마시키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내년 총선 때까지 ‘당 우위’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경주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