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웅진 회장.
CP가 사기성을 띠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해 7월부터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던 9월 26일 직전까지 CP를 발행했다. 문제는 CP 발행을 주도한 윤 회장과 일부 임원들이 웅진홀딩스가 자금을 갚을 능력이 없음에도 CP를 발행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사기라는 것.
윤 회장은 또 웅진식품 등 계열사에서 돈을 빼 웅진캐피탈 등을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다만 검찰은 윤 회장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사재를 출연해 기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 등을 참작해 불구속기소했다.
검찰 발표대로 윤 회장이 비록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 한 게 아니라지만 ‘사기성’이 포착됐다는 점은 윤 회장 도덕성에 치명타다. 물론 아직 기소 단계여서 재판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기성 CP 발행은 웅진홀딩스가 느닷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던 때 이미 제기된 의혹이다. 이것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윤 회장 입장이 꽤 난처해진 것.
가뜩이나 윤 회장은 재기 희망을 강력히 내비치던 터. 재판 결과가 윤 회장에게 좋게 나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만일 검찰 기소 내용이 재판에서마저 입증된다면 윤 회장의 재기를 장담하기 힘들다. 그룹 해체라는 책임에다 사기성이 더해진다면 향후 다시 일어서는 일이 불투명할 것이라는 게 재계 안팎의 관측이다.
강덕수 STX 회장.
STX팬오션, STX건설, STX조선해양 등 STX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이미 법정관리와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가 법원과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상태다. 재계에서는 STX그룹의 공중분해를 기정사실화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강 회장은 STX를 재계 13위까지 올려놓은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회사와 별개로 그의 운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재계에서는 그룹 붕괴에 도의적 책임을 지닌 강 회장이 다른 계열사 대표 자리마저 수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STX팬오션은 지난 2일 공시를 통해 강덕수 대표이사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STX팬오션은 기존 강덕수·유천일 공동 대표이사 체제에서 유천일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강 회장은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대표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강 회장이 나머지 계열사들에 대한 경영권도 내려놓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 5월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백의종군’이란 단어까지 꺼내들며 그룹을 살리기 위해 경영권·보상·자리 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STX팬오션 대표이사 사임으로 강 회장이 현재 갖고 있는 대표이사 타이틀은 (주)STX, STX중공업, STX조선해양, 3개로 줄어들었다. 이 중에서 그룹 주력사인 STX조선해양은 지난 7월 31일 산업은행 등 8개 채권은행단과 자율협약 양해각서(MOU)를 맺고 자율협약 체제에 돌입했다. 이로써 총 3조 원의 자금이 STX조선해양에 지원될 예정이다.
만약 채권단의 용인 하에 대표직을 유지하더라도 새로운 지배 체제 아래에서 경영권을 비롯해 강 회장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를 거친 한 대기업 인사는 “채권단이 기업에 상주하면서 사업과 재무를 일일이 체크하고 간섭한다”며 “자율협약 체제에서 기존 오너와 경영진의 활동은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주)STX와 STX중공업 역시 자율협약을 신청해 놓고 채권단의 실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STX그룹 측은 “STX팬오션의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연스레 대표에서 물러난 것”이라며 “다른 계열사의 경우 물론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강 회장에게 경영은 맡기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처럼 자율협약 단계에서 기존 경영진은 보통 ‘회사의 조기 정상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경영권 유지의 당위성을 설명해왔다. 채권단 또한 마땅한 인물이 없을 경우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재계 분위기로 봐서는 채권단이 강 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윤석금 회장 역시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 직후인 지난해 10월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에 취임했지만 ‘경영권 유지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에 결국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만약 강 회장도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면 윤 회장에게 쏟아졌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