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씨는 최근 언론의 집요한 요구에 못이겨 자신이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을 스스로 공개했다.
수세에 몰린 김도술씨는 결국 어디론가 행방을 감췄다. 그동안 녹음테이프 내용에 대해 조작의혹을 제기했던 한나라당은 여전히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수위는 예전과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검찰은 테이프 내용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98∼99년 1차 병무비리 군겙改蘭옘恥瀛뻠括 조사자료를 기대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두 아들의 병무비리 의혹에 대한 당시 내사기록을 담은 디스켓과 김도술씨 등의 진술서 등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핵심 조사기록은 어디론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검찰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난제’인 셈이다.
|
||
| ▲ 민주당 한화갑 대표와 당직자들이 19일 당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천만인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 ||
하지만 군검찰이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느냐에 앞서 과연 디스켓과 김씨의 진술서를 보유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당시 군검찰 수사팀 관계자들은 디스켓과 김씨 진술서의 존재 여부에 대해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다.
고석 검찰부장(현 국방부 법무과장)과 이명현 수사팀장(98∼99년 1차 수사팀장·현 중령), 유관석 소령(2차 수사팀 수석법무관·현 1군 법무과 근무) 등 실무책임자급 관계자들의 주장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명현 중령은 이정연씨의 병무비리 내사 여부에 대해 그간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씨와 수연씨는 수사대상에 있었지만 손도 대지 못했다. 공소시효가 지났던 것도 있지만 병적기록표 등 기초자료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무청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김대업씨가 (김도술씨 등)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 정연씨 등의 병역면제 문제 등의 이야기가 나왔을지 모르지만 (내가) 구체적인 서류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 중령의 이야기는 진술서 자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업씨가 김도술씨로부터 진술을 받았을 개연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중령은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같은 기존 주장에 “97년 대선 때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의혹이었던 만큼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천용택 장관 등 윗선에서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정치인 특히 야당 총재의 아들에 대해 조사를 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조사를 하지 말라고 말렸다”고 덧붙였다.
이 중령의 후임으로 2차 수사팀을 맡았던 유관석 소령은 그러나 최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 검찰에서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해 내사를 벌였고 내사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
||
| ▲ 지난 5일 검찰에 소환된 김대업씨. | ||
이처럼 수사책임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은 당시 수사팀 내부 불협화음에 따른 수사실무책임자의 잦은 교체와 무관치 않다.
98년 12월 병무비리 1차 군검합수반 수사팀장을 맡았던 사람은 이명현 중령이었다. 이 중령은 99년 3월말까지 병무비리 수사를 지휘하다가 사건 마무리 단계에서 고석 당시 검찰부장에게 수사권을 넘겼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무렵은 이 중령이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검찰과 막바지 조율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수사책임자를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중령은 결국 교체됐다. 내부 불협화음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사 지휘 라인인 이 중령과 고 부장간의 감정도 상당히 악화됐다. “유력 정치인과 기무사 등 ‘성역’에 해당하는 인사들로까지 수사영역을 확대하자 고 부장이 이를 은폐 축소하려 했던 것”이라는 이 중령의 반발에 대해 고 부장은 “김대업이라는 민간인을 수사에 끌어들여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수사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등 당시 ‘극단적’으로 맞섰던 것만 봐도 그렇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고석 부장이 박선기 법무관을 찾아가 이 중령의 수사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맡겠다고 요구해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교체 배경을 전했다.
결국 3월 말부터 고 부장의 지휘 아래 유관석 소령이 실무책임을 맡았고 4월27일 결과 발표와 함께 1차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고 부장과 유 소령은 이어 4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진행된 2차 병무비리 수사를 진행시켰다. 2차 수사팀에서는 김대업씨도 이 중령과 함께 배제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 중령이 극력 반발, 윗선에 문제를 제기해 고 부장도 수사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정연씨에 대한 조사자료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수사선상의 변화와 김대업씨의 녹취록 작성 시점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김씨는 최근 공개된 녹취록을 지난 99년 3∼4월쯤 작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시기는 수사 책임자 라인이 이 중령에서 고 부장과 유 소령 체제로 교체되던 즈음이다. 여기에 “김대업씨가 김도술에 대해 수십 차례 조사를 벌였다”는 이 중령의 주장을 참고하면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이 중령의 지휘 아래 김대업씨가 김도술씨에 대한 조사를 착수해 그후 유 소령과 함께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 ‘성과’의 결과물이 바로 공개된 녹취록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진술서와 디스켓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디스켓으로 정리된 조사기록이 있고, 제대로 관리가 이뤄졌다면 군검찰에 남아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수사팀 교체과정에서 상당 분량의 ‘핵심 수사기록’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성과물’이 제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른바 ‘캐비닛 도끼 파기사건’이 ‘수사기록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1차 수사팀의 한 관계자가 전하는 ‘캐비닛 도끼 파기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고석 부장이 수사를 맡으면서 이명현 중령에게 수사자료를 모두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중령은 고 부장을 믿지 못했다.
수사를 축소 은폐하려는 것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중령은 핵심 수사기록을 뺀 채 기초적인 자료만 넘겼다. 나머지는 이 중령의 캐비닛에 숨겨져 있었다. 4월 말 고 부장의 지휘로 병무비리 2차수사가 시작되면서 한때 이 중령과 김대업씨의 군검찰부 출입이 금지된 적이 있다.
그 시기에 이 중령의 캐비닛이 도끼로 추정되는 것으로 부서졌고 그 안에 있었던 수사기록이 사라졌다. 3, 4차 병무비리 수사를 할 때 그때 사라진 기록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 중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설마 도끼로 부수고 가져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정말 황당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나 누가 가져갔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섣부른’ 언급을 피했다.
한편 고 부장은 “군검찰부의 최고책임자인 내가 어떻게 수사자료를 일일이 챙기겠는가. 수사자료를 챙기는 것은 행정실무자들의 몫”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