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방직 전경.
그로부터 40년 후 <전태일 평전>에 나타난 국내노동의 참혹한 실태는 일제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3~17세 사이의 시다(보조)가 평화시장에만 1만 2000명이 있었다. 그 시다 중 한 사람이 전태일에게 “사흘 밤이나 주사 맞고 일했더니 이젠 눈이 침침해서 아무리 보려고 애써도 보이지 않고 손이 마음대로 펴지지가 않아요”라고 울며 말한다.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가 도시락 밥 위에 뽀얗게 내려앉는 불결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신경통, 소화불량, 면폐증, 기관지염 등의 직업병이 노동자를 덮쳤다.
한편 일본의 1939년 통계에 의하면 유년 여공의 비율은 35.9%에 달했다. <여공애사>(1954) 속엔 비참한 방직공장 여공들의 실태가 낱낱이 고발돼 있다. 실제 직공이었던 저자는 14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으나 폐결핵과 영양실조가 겹쳐 책이 출간되던 해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