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29일 잠실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후원회에서 이회창 후보를 비롯한 당시 지도부가 후원금 을 내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김각중 당시 전경련 회장 등 재계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 ||
특히 검찰은 SK의 한나라당 자금지원 부분을 수사하면서 한나라당에 대한 계좌추적에 나설 것임을 밝히고 있어 이럴 경우 자칫 한나라당과 또다른 기업간의 커넥션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치권 주변에서는 A그룹, B건설, C그룹 등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에 대한 검찰의 내사가 진행중이라는 미확인 소문이 나돌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라 일컬어져 왔던 ‘대선자금’이 총선 5개월여를 앞두고 실체를 드러낼 경우, 정치권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있던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후원회는 김각중 당시 전경련 회장 등 경제5단체장을 포함, 7천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후원회를 통해 한나라당은 후원금 50억원, 약정금 14억원 등 총 64억원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1백만 당원 1만원 당비납부 운동’ 등으로 42억원과 약정금 12억원 등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자체 발표만으로도 대략 1백18억원을 후원금으로 거둬들인 셈이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던 한나라당은, 후원회 이후 SK측으로부터 1백억원의 자금을 불법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돈웅 의원이 SK로부터 돈을 받을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 중진 10여 명이 기업리스트를 놓고 자금모금을 위한 각개접촉 계획을 세웠다는 점은 제2, 제3의 SK사태를 예견케 하는 단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최돈웅 당시 재정위원장이 SK그룹을 맡고, 다른 중진의원들은 SK 이외의 몇몇 대기업을 맡기로 했던 것으로 드러나 최 의원 이외의 중진의원들이 맡았던 ‘또다른 기업들’이 어디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한 중진과 기업 오너가 인척관계에 있는 A그룹도 적지 않은 대선자금을 제공했을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더욱이 A그룹은 지난해 사업을 확장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해 재계 순위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보험’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후원회를 개최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한나라당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B건설도 적지 않은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입소문이 나돌고 있다. B그룹의 전 오너가 재기를 모색하는 과정에 한나라당에 줄을 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
실제로 B사의 경우 현직 경영인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B사의 경영인은 보험 차원에서 신권부의 핵심 인사들과도 교분을 가졌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이밖에도 국내 굴지의 C그룹의 이름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재계 수위의 SK그룹에서 1백억원의 대선자금이 건네졌다면, C그룹이 예외일 수 없다는 분석에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C그룹의 경우, 계열사를 동원, 소액으로 다수의 기업에서 후원금을 갹출해 제공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같은 입소문은 검찰의 계좌추적 등을 통해 진위 여부가 모두 확인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SK 비자금 수사의 방향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계좌추적 등을 통해 이 같은 입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한 상태다.
대선자금의 경우 통상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제공된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을 제외하고 한나라당 대선자금만을 수사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SK그룹에서 1백억원의 대선자금을 제공한 시점이 지난해 11월 중순에 이뤄진 반면, 노무현 대통령 주변인사들에 대한 기업의 접촉은 후보단일화 이후 대선 전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후보단일화 직후에는 쇄도하는 면담 요청에 일정을 조정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며 “면담 요청자 가운데는 기업체 관계자도 적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이 인사는 “후보단일화 이전에는 이상수 총장이나 정대철 선대위원장이 주로 안면있는 기업인들을 찾아다니며 접촉한 반면, 후보단일화 이후 대선 직전에는 외부에서 면담 요청이 주로 들어왔고, 선별적으로 접촉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이 집중된 시기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이전이었다면, 민주당의 경우 후보단일화 이후 대선 직전에 대선자금이 집중됐을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기업들의 대선자금 제공 사실이 SK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