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결과 여성은 이 아무개 씨(당시 30)로 밝혀졌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이 씨는 지난 2004년 수백억 원대의 부동산을 가진 재산가의 아들과 결혼한 평범한 주부였다. 그는 사체로 발견되기 일주일 전인 6월 9일 행방불명돼 이미 경찰에 실종신고가 들어간 상태였다. 이 씨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잡힌 것은 그가 나온 출신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은행 CCTV 화면 속이었다. 이 씨의 시신 상태로 보아 경찰은 이 씨가 이날 바로 피살됐을 거라 추정했다.
이 씨의 신원을 파악한 경찰은 곧바로 살인 사건의 수사에 들어갔지만 시작부터 난항에 빠졌다. 가장 먼저 수백억 원대 재산가의 며느리가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돈암동의 미분양 아파트에 들어갔는지 그 이유부터가 불분명했다. 스스로 찾아갔는지, 아님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끌려들어갔는지 조차 확인이 되지 않았다. 이 씨의 사체는 심하게 부패해있어 성폭행이나 묶인 흔적이 감별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부검을 통해 ‘부패 정도가 심해 사인이 불분명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아파트 부엌에서 이 씨의 머리카락과 남성용 와이셔츠 단추가 발견된 것을 두고 경찰은 범인과 이 씨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발견당시 이 씨의 사체 혈중 알코올농도는 0.15%로, 만취 상태였다. 그러나 이 씨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이 씨가 평소 술을 잘 못 마시고, 즐기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따라서 경찰은 이 씨가 혼자 술을 마셨을 가능성은 극히 낮고 평소 알고 지낸 누군가와 함께 마셨을 거라고 보고 주변 지인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펼쳐 나갔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이 씨가 나온 대학의 이 아무개 교수였다. 경찰의 수사 결과 이 씨가 실종되기 2시간 전인 9일 낮 12시쯤에도 두 사람은 연구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 교수가 이 씨의 마지막 목격자일 수도 있는 셈이었다.
특히 일각에서는 평소 두 사람이 함께 부동산을 보러 다녔으며,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씨의 죽음과 관련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이 씨 실종 당일 연구실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헤어져, 이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진술했다. 이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불륜 관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함께 집을 보러 다닌 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 당시 이 교수를 다섯 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이 교수의 유전자를 채취해 이 씨 시신 발견 당시 가슴에 묻어있던 타액 DNA와 비교도 해봤다. 그러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명돼 이 교수는 용의선상에서 일단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아무개 교수와 이 씨를 잘 알고 있던 주변 지인들도 “두 사람이 깊은 관계였다는 소문은 말도 안 된다”라고 항변했다.
다음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이 씨의 남편 A 씨였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지난 2004년으로 당시는 결혼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혼이었다. 경찰은 A 씨 부부가 겉으로 보기엔 신혼이라 결혼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이 씨가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불만을 나타냈던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이 씨가 수백억 원대 재산을 보유한 시댁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갈등을 빚어왔다는 것.
그러나 A 씨는 “아내와의 사이에 결혼 생활을 위협할 만한 큰 불화는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A 씨를 조사해본 결과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확실하고, 살인 혐의점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이 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사건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씨의 남편과 가족들은 현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A 씨는 다시 이 씨의 살인 사건이 언급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이미 8년 전에 경찰 조사도 받고 힘들었다. 사건 현장에서 와이셔츠 단추가 발견됐다고 해서 내가 입던 와이셔츠도 증거품으로 다 제출했다. 이제 와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도 “이 씨 살인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결국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공개수사로 전환해 목격자 수배전단을 뿌리는 등 모든 방법을 다 써봤다. 그럼에도 더 이상 새롭게 드러난 게 없다. 내 경찰 인생에서도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이다”라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어찌됐든 계획 범죄 가능성”
이 아무개 씨(당시 30)가 서울 돈암동의 한 미분양 아파트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당시 현장에는 이 씨의 소지품이나 현금 등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를 두고 경찰에서는 수백억 원대 재산가 며느리의 돈을 노린 범행이 아닌, 원한에 의한 살인이거나 청부 살인의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씨의 주변 지인들은 이 씨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할 성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씨의 대학 친구였던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씨가 활달하고 사교성이 좋아 평판이 좋았다. 이 씨가 대학을 중간에 편입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개교기념행사에서도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학교생활도 원만히 잘했다”고 전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도 “이 씨 주변인들에 대해 원한관계가 있었는지 심층 수사를 벌여왔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가진 이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씨가 청부살인을 당했다면 모르는 사람에 의해 돈암동의 미분양 아파트에 끌려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피해자는 저항을 하며 소란이 벌어지기 때문에 목격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씨 사건의 경우는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을 훑으면서 여러 차례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이 씨를 봤다는 목격자가 전혀 나타나지 않아, 이 씨가 언제 누구와 미분양 아파트에 들어갔는지 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 씨 살인이 우발적 범죄가 아닌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는 입주가 시작되지 않은 빈집이라 현관 번호키의 비밀번호가 모두 ‘0000’이었다. 따라서 범인이 그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사람이 없어 범행을 저지르기 쉬운 아파트로 이 씨를 유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추측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