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을 칼로 난도질하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셰릴 말릴. 왼쪽 위부터 그가 조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40년 동안 못해본 남자> <크로싱 오버> <콜래트럴 데미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할리우드로 진출해 TV나 영화에서 활동하는 것. 뉴욕에서 연기학원을 다니던 그는 고물 차에 짐을 싣고 서부로 향했고, 1995년부터 다양한 CF와 영화와 TV에서 조연이나 단역으로 활동했다. 1995년에 <ER>, 1997년에 <사인필드>, 199년에 <퍼시픽 블루>, 2001년에 <웨스트 윙> 등 유명 TV 시리즈에 작은 역으로 꾸준히 출연하던 그는 영화로도 진출했고 2005년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에서 주인공 앤디(스티브 카렐 분)의 직장 동료 중 한 명인 하지즈 역을 맡아 대중에게 크게 알려졌다. 이때 그의 나이 40세. 늦었지만 그는 나름의 작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를 찾는 곳도 늘어났다.
켄드라 비비
그가 경찰에게 붙잡힌 건 2008년 8월 11일. 오후 6시경 캘리포니아의 오션사이드 기차역에서 내리던 순간, 기다리던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살인 미수와 상해가 죄목이었고 처음엔 200만 달러로 책정되었던 보석금은 도주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1000만 달러로 뛰었고, 이후 300만 달러로 조정되었다. 검사는 말릴이 범죄를 미리 계획했으며 치명적 무기를 사용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말릴은 우발적인 일이었다는 법정답변서를 제출했다. 말릴의 주장에 의하면 그 집에 들어갔을 때 비비의 애인인 말도나도로부터 위협을 느꼈고,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나와 비비를 공격한 건 실수로 그녀를 말도나도로 오인한 탓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조사 결과는 끔찍했다. 말릴은 비비의 집 뒤쪽에 있는 파티오에서 시작해 집을 통과해 앞 쪽의 파티오에 이르는 동선을 그리며 비비를 총 23번 칼로 찔렀다. 중간에 말도나도에게 제지를 당해 칼을 손에서 놓치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다른 칼을 가지고 나왔다. 더 놀라운 건 사건 당시 비비의 두 아이가 옆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용감한 이웃 사람이 뛰어들어 말릴을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끔찍한 일이 이어졌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사건을 저지른 후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 지역에 있는 티후아나라는 도시로 도망갔다.
2010년 9월 16일 살인 및 폭행을 시도한 죄로 기소된 말릴은 2010년 12월 16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놀라운 반전은 23번의 ‘칼침’을 맞았던 켄드라 비비가 살아 있었다는 것. 오른쪽 폐에 구멍이 났고 왼쪽 폐는 거의 관통하다시피 했으며 식도 부근에 칼을 맞았을 땐 아슬아슬하게 대동맥을 비켜갔다. 사건 당시 극심한 출혈로 사경을 헤매었던 그녀는 기적적으로 소생했고 법정에 나와 직접 증언했다. 검사였던 키스 와타나베는 켄드라에 대해 “23차례나 찔리고도 살아남는 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 남자친구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은 진정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종신형 선고를 받은 후 말릴은 “나는 인생의 처참한 실패자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삼촌으로서, 형제로서, 친구로서 그렇다”는 말을 남기고 교도소로 향했다. 현재 캘리포니아 아이언우드 주립 교도소에 3년째 복역 중. 가석방에 대한 가능성은 14년 복역 후에나 논의 정도가 가능하니 앞으로 10년 이상 말릴은 꼼짝 없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