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이 야구장을 찾아 삼성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모 구단 프런트가 묘한 질문을 던졌다. 7월 중순 이후 꾸준히 4강을 형성 중인 삼성, LG, 두산, 넥센의 공통점을 맞춰보라는 것이었다. 답이야 뻔했다.
“4개 팀 투수진과 야수진 그리고 벤치의 용병술이 하위권 팀들보다 앞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기자의 말에 이 프런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듣고 싶던 답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올 시즌은 구단주의 야구 사랑에 따라 팀 성적이 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4강팀 구단주의 야구 사랑이 하위 5개팀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럴까. 야구계는 야구 사랑과 관심 정도에 따라 구단 오너들을 ‘진두지휘형’ ‘자금 지원형’ ‘생계형’ ‘무관심형’으로 나누고 있다.
‘진두지휘형’의 대표적인 예는 LG와 두산이다. LG 구단주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야구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야구 마니아다. 중학교 시절까지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구 부회장은 바쁜 와중에도 LG 경기를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LG가 2002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구단에 풍부한 실탄을 제공해 고액의 FA(자유계약선수)를 잡도록 지원해줬다. 덕분에 지난 시즌이 끝나고서 LG는 이진영, 정성훈 등 팀 내 FA뿐만 아니라 ‘특급 셋업맨’ 정현욱을 삼성에서 데려올 수 있었다.
특히나 구 부회장은 팀 성적이 바닥일 때 600억 원을 들여 2군 훈련장을 새로 짓도록 지시한 바 있다. LG 관계자는 “부회장님께서 ‘팀이 항구적으로 강해지려면 유망주 육성과 지속적인 훈련이 중요하다’며 ‘돈 생각하지 말고,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뛸 수 있는 최적의 훈련장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면서 “내년 7월 완공을 목표로 경기도 이천에 2군 훈련장을 짓는 중”이라고 밝혔다.
LG 구단주 구본준 부회장(왼쪽)과 두산 구단주 박정원 회장. 사진제공=LG 트윈스·두산 베어스
두산 구단주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도 야구 사랑만큼은 구 부회장 못지 않다. 고교시절부터 야구광이었던 박 회장은 2009년 두산 구단주가 된 뒤 아무리 바빠도 2주일에 한 번씩 야구장을 찾는다. 다른 구단주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VIP석에 앉는 걸 사양하고, 수행원 없이 일반 관중석에 앉아 조용히 야구를 관전한다는 것이다.
두산 김승영 사장은 “회장님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야구단 소식을 빠짐없이 챙기시면서도 팀 성적과 관련해선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신다”며 “그저 ‘두산을 신인선수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구단으로 만들어주십시오’하는 요청만 하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파격적인 구단 지원은 야구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박 회장은 구단주에 취임하자마자 잠실구장 내 구단 사무실을 전면 리모델링했다. 당시 박 회장은 “프런트가 최적의 환경에서 근무해야 좋은 아이디어와 업무 의욕이 생긴다”며 리모델링을 진두지휘했는데, 구단주가 직접 프런트 직원들의 근무환경을 챙긴 건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기다 박 회장은 최근 400억 원을 투자해 경기도 이천의 2군 훈련장을 신축하도록 지시한 상태다. 김 사장은 “회장님께서 ‘기존 2군 훈련장도 시설이 나쁘진 않았지만, 실내 연습장이 작고, 웨이트트레이닝과 치료시설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며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사용하는 훈련장 수준으로 2군 훈련장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이 구단주를 맡기 전까지 두산은 롯데와 함께 대표적인 ‘짠돌이 구단’이었다. 그러나 지금 두산을 보고 그와 같이 말하는 야구인은 없다. 두산이 활발하게 FA 영입에 나서는데다 신인 계약액도 다른 구단보다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20일 김병현 입단식에 참석한 이장석 넥센 구단주.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선수 시절 초교생이던 재용 씨가 야구장에 놀러 오곤 했다. 그러면 내가 재용 씨와 캐치볼을 하며 야구를 가르쳐줬다. 어찌나 야구하는 걸 재밌어하고 신나하는지 늘 캐치볼을 끝마칠 즈음이면 수행원들에게 아쉬운 눈빛으로 ‘10분만 더 놀면 안 돼요’하고 애원하곤 했다. 현재는 어른이 돼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됐지만, 야구 사랑은 초교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이 부회장은 구단 일엔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구단에 빵빵한 실탄을 쏴주며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한다. 이는 이석채 KT 회장도 마찬가지다. 이 회장은 10구단 창단을 이끈 주인공이지만, 구단 인사엔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초대 사령탑으로 조범현 감독을 선임했을 때도 회장님은 최종 결정만 해주셨을 뿐, 인선과 추천은 구단 수뇌부의 몫이었다”며 “앞으로도 신생구단 운영은 전적으로 단장, 사장에게 맡기실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넥센 구단주와 CEO를 겸하는 이장석 사장은 다른 구단주들과는 입장이 다르다. 모그룹이 없는 넥센은 이 사장이 구단 운영비를 조달하고,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직접 메인·서브 스폰서 관계자들과 만나 후원 협상을 한다. 구단 운영에도 포괄적으로 개입해 감독 선임과 2군 육성, 신인선수 발굴 등을 직접 챙긴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야구단을 ‘비싼 놀이’나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다른 구단주들과 달리 이 사장에게 넥센은 유일한 사업체이자 생계수단일 수 있다”며 “팀 살림살이와 운영을 직접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이 사장이야말로 10개구단 구단주 가운데 가장 메이저리그 구단주에 근접한 사람일 것”이라고 평했다.
이 사장의 적극적인 움직임 덕분일까. 넥센은 야구계의 예상을 뒤엎고 개막전부터 8월 중순이 되도록 4위권을 지키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KIA ‘무관심형’ 한화·SK ‘수감중’
왼쪽부터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회장.
틀린 말도 아니다. KIA 구단주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아들인 정 부회장은 2010년 구단주에 올랐다. 하지만, 구단주에 오른 이후 야구장을 찾은 적이 거의 없다. 다른 구단주들처럼 야구단의 비전을 제시한 일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일까. KIA는 삼성과 견줄 만한 대기업을 모그룹으로 뒀음에도 트레이닝시스템과 구단 운영은 9개 구단 가운데 최악으로 꼽힌다. 야구단을 통한 모그룹 이미지 개선과 홍보에도 빈약해 다른 구단들로부터 “팀 성적에만 얽매이는 쌍팔년도식 야구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기아자동차 사장이 구단 사장을 겸임하는 것도 문제다. 이삼웅 사장이 주인공이다. 이 사장은 자동차 사장을 겸임하는 통에 KBO(한국야구위원회)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열이면 아홉은 불참한다. KBO 이사회에서 모든 야구계 현안이 결정된다는 걸 고려하면 KIA 사장의 불참은 구단에겐 크나큰 마이너스다. 다른 구단 사장들이 이사회를 통해 자기 구단에 유리한 쪽으로 야구규약을 바꾸거나 현안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김태균과 악수하는 김승연 한화 구단주. 현재 수감 중이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그나마 KIA는 행복한 편이다. 한화와 SK 구단주는 야구단에 신경을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룹 오너가 수감 생활 중이기 때문이다. 김승연 한화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돼 옥중에 있다.
두 구단 관계자는 “회장님께서 누구보다 야구를 좋아하시고, 애정이 깊으셨는데 갑작스럽게 구속되셔서 우리들도 크게 놀라고 위축된 상태”라며 “공교롭게 회장님이 부재하신 이후 야구단 성적도 떨어졌다”고 울상을 지었다.
옥중에 있는 두 회장은 야구단 소식은 접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회장은 옥중의 신문을 보다가 ‘대전구장 리모델링이 순조롭게 끝났다’는 기사를 보고 “야구팬들이 보다 편하게 야구를 관전하게 됐다”며 모처럼만에 미소를 지었다는 후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