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중 한 명이 아프다. 우리는 잠긴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열쇠가 없다’고 했다.(중략)나는 우리 친구들 중에서 외박을 자주 나가는 편이었다. 하루는 한국남자 2명이 클럽에 와서 내 친구 캐시와 같이 외박 나갈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가기 싫다며 ‘보스’(업주)에게 울면서 하소연했다. 보스는 오히려 욕을 하며 우리를 몰아붙였다.
어쩔 수 없이 호텔로 갔다. 나는 평소와 달리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에게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내 머리채를 잡아 끌고 발길질을 했다. 내 얼굴을 수없이 때렸다.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고 그냥 얼어붙은 채 맞고만 있었다. 한참을 때린 뒤 그는 내 몸을 더듬고 있었다.
22세 마리아의 이야기
지난 4월3일 여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뒤 우리는 곧바로 동두천으로 보내졌다. 먼저 온 여성들과는 철저하게 분리된 채 2층에 감금됐다. 치가 떨리도록 무서웠다. 불이 나더라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러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물이 먹고 싶어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은 보스의 친구였다. 우리가 일을 마치면 그는 술에 잔뜩 취한 채 이층으로 올라온다. 그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너무 섬뜩하고 공포에 질렸지만 우리는 탈출할 꿈도 꿀 수 없었다. 우리 매니저가 항상 감시를 했기 때문이다.(중략)
나는 외박을 나가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침이었고 매니저는 내게 그 손님이 나를 ‘외식’시켜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이미 취해있었으므로 그가 나를 모텔로 데려가는지조차 몰랐다. 나는 소리치면서, 울면서 반항했지만 그의 힘 앞에 내 몸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는 악마였다. 절대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빌었지만걖" 나의 완강한 반항에 그는 내 목을 조르기도 했다. 나는 죽는 줄 알았다. 머리 속에는 오직 가족들의 얼굴만이 아른거렸다.
26세 리즈의 이야기
한국에서의 생활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 중에서도 한 외국손님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뼈아픈 기억을 안겨주었다. 그는 클럽에 와서 나와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보스에게 외박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냄새나는 그가 정말 싫었다. 거절했지만 소용없었다. 보스는 “한국에 돈 벌러 온 것 아냐? 여기는 네 나라도 아니다. 여기는 식당이 아니란 말이야. 필리핀에 갈 때쯤이면 돈 많이 벌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보스의 말을 거절할 힘이 없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맘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 외국손님과의 섹스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가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 성병까지 옮아버렸던 것이었다. 원하지 않은 임신까지 하고 말았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병 치료약을 너무 먹어 자연유산이 되고 말았다. 병원 치료비는 물론 내 일당에서 모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