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회장단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올 상반기 투자 실적이 부진한 것은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요인이 크다. 삼성전자는 올해 설비 신·증설과 연구·개발(R&D) 등에 24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상반기까지 실제 투자 집행액은 9조 439억 원으로 집계됐다. 투자 집행률이 고작 37.7%다. 현대자동차도 올 상반기 시설 투자액이 9000억여 원에 그치면서 투자 집행률이 35%에 못 미친다.
전경련이 최근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하반기 투자 계획을 조사한 결과 20%에 달하는 6개 그룹이 당초 계획보다 올해 투자를 줄이겠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기업들의 투자의지는 경직돼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 하반기에는 창조경제 관련 투자, 정부의 1·2단계 투자 활성화대책을 통해 투자 확대의 계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10대 그룹 총수들도 청와대 회동에서 적극적인 투자계획을 밝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소프트웨어 인재 육성과 기초과학 육성 및 융·복합 기술 개발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발표한 2조 원 규모의 창조경제 관련 투자계획을 다시 꺼낸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자동차나 철강 등에서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면서 “현재 자동차를 연 740만 대 생산하고 있는데 해외 생산이 늘고 있어서 열심히 노력하면 연 1000만 대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신규 항공기를 60대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스마트그리드, 빌딩관리시스템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신시장 창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10대 그룹들이 신사업 투자분야는 ICT를 중심으로 한 융·복합 산업, 전기자동차, 에너지 신시장, 항공 분야 등이다. 각 그룹 총수들은 이들 분야를 신시장 창출의 동력으로 삼아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지만, 각 그룹 내부는 물론 시장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하는 시장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ICT는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 분야이고, 대체에너지 시장도 국가유가가 일시적 유동 속에서도 안정세를 보여 성장 가능성이 당장은 크지 않다”면서 “투자 여건이 녹록지 않은데, 돈을 쏟아 붓는 것은 결국 기업경영의 기본을 무시한 채 생색내기를 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사내 유보금을 풀라는 얘기”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정부도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나을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해왔지만, 최근에는 중립으로 돌아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분기(1.1%)의 경제성장률이 0%대 저성장 흐름에서 9분기 만에 탈출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내수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까지 우울한 전망이 압도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이에 따른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최대 수출국인 경제 성장 둔화가 주된 요인들이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신사업에 돈을 쏟아 붓기보다는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30대 그룹 투자 계획에는 ‘허수’도 있다. 연간 투자 목표의 20%에 달하는 약 30조 원은 해외 투자다. 해외 직접투자가 1% 증가하면 국내 설비투자가 0.08%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도 있다. 국내 산업구조가 변하는 데도, 과거식 패턴을 반복하는 관성을 문제로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 논리였던 ‘설비투자 확대→수출 증가→경제성장→재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이제는 ‘옛 노래’라는 것이다.
국내 산업구조가 이익을 낼 수 있는 정점에 다다른 분야가 많은 만큼 저성장의 기조를 벗어나려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는 판국이다. 기업들이 “이제 한국에서 대규모로 투자할 곳도 없고 투자할 이유도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11년을 정점으로 설비투자가 꾸준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당분간 이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