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치의 수준을 고스란히 내보인 지난 10일의 국회 본 회의 대정부 질의 장면. | ||
첫번째 질문자로 나선 박희태 한나라당 의원이 불을 댕긴 뒤 몇차례 짧은 공방을 주고받은 여야 의원의 격돌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다섯번째 질문자로 등단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에서부터. 이 의원이 일부 언론 보도를 인용해 노벨상 로비 의혹을 제기하며 “이 문건에 나타난 추진 목표가 실제로 어떻게 됐는지 하나씩 하나씩 보자”고 말하자 민주당 의원석은 들끓기 시작했다.
“이재오 코미디하지 마.” “왜 저런 저질 정치인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 거야.”(김옥두 의원) “언제부터 최규선 계보가 됐느냐.”(윤철상 의원) “3류 소설가로 나가라.”(정균환 총무) 이에 이재오 의원은 “김옥두 의원, 조용하게 잘 들어. 공부 좀 해야 돼”라고 맞섰다. 이 의원은 또 의혹을 하나씩 제기할 때마다 한나라당 동료 의원들에게 “맞지요”라며 호응을 이끌어 민주당 의원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거기서 자폭해” “이회창 없어. 충성발언 그만하고 내려와”(배기선 의원)라고 소리쳤으며 한 쪽에서는 “너 양아치냐”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기에 ‘화답’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폭언과 욕설은 이 의원에 이어 단상에 오른 전갑길 민주당 의원의 발언에서부터 시작됐다. 전 의원이 이날 꺼낸 ‘적나라한’ 얘기는 이회창 후보와 한인옥 여사가 기양건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 한나라당 의원석은 곧바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만해라 씨X, 말도 안되는 소리 너무 오래하잖아”(안영근) “미친 놈”(안상수) “이 새끼들 지들이 다 해 처먹고 누구에게 뒤집어 씌워”(김문수) “김대업에 이어 전대업이가 등장했구만”(엄호성) “정신병자 아니냐”(이규택) “완전히 돌았구만”(백승홍)이라는 폭언들로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시장 바닥을 방불케 했다.
▲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왼쪽)과 민주당 전갑길 의원. | ||
욕설의 한가운데 섰던 전 의원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발광 발악을 해라”고 응수에 나섰다. 김문수 의원을 향해 “당신도 (명단에) 들어있어. 발악을 하는구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백승홍 의원에게는 “백승홍씨, 당신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당신 지역구 사람들이 능력없는 의원 뽑았다고 후회하고 있어. 조용히 해”라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뒤이은 대정부 질문에서 송석찬 민주당 의원이 다시 이회창 후보의 부친 친일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거론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의 욕설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규택 총무는 “야, 연어”라고 부르며 “에이, 능지처참할 놈”이라고 욕을 했다. ‘연어’는 당적을 바꾼 송 의원의 전력을 비꼬은 별명. 임인배 의원도 “연어야 연어야 정신 좀 차려라. 공부 좀 해라”고 말했고 윤두환 의원은 송 의원이 <조선신보>를 인용한 것 아니냐며 “간첩 아니야? 간첩이라면 잡아야지”라고 말했으며 의원석 어디선가는 “모두 사형시켜야 돼” “호로자식”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의원들의 난장판 언쟁 속에서 “국민들이 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고 제발 품위를 지켜달라”는 박관용 국회의장의 호소는 의원들 귀에 들리지도 않는 듯 보였다.다음날인 11일 이회창 후보는 이규택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자극적인 표현은 자제해달라”고 주문했지만 분이 가시지 않은 한나라당은 전갑길, 송석찬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당곡중학교 1학년 33명의 학생들을 인솔하고 10일 대정부 질문을 지켜 본 최종희 교사(43)는 이 날 견학이 끝나고 국회 직원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국민의 의식수준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의 이런 모습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최 교사는 “어른들이야 TV에서 늘 보는 장면이니까 새로울 것도 없는 모습 아니냐”면서도 “하지만 ‘왜 욕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이들끼리 비웃음을 던질 때는 낯이 달아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