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충동 집의 경매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 ||
사태가 이쯤 되자 새삼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최 회장측이 제기한 항고 이유. 과연 최 회장이 뒤늦게 ‘장충동 집 지키기’에 나선 것일까.최 회장에게 장충동 집은 단순한 거주지 이상의 의미가 담긴 곳이다. 재벌 총수로서 누렸던 영화와 경영일선에서 퇴진해야 했던 시련 등 지난 세월의 영욕이 서려 있는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과거 리비아 대수로공사 입찰을 앞두고 최 회장이 장충동 집 서재에 칩거해 장고를 거듭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지난 98년 최악의 경영난을 맞았던 최 회장은 금융권에 긴급자금을 요청하면서 동아건설 지분 등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된 장충동 집을 담보로 맡겼다. 하지만 대출금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자 자산관리공사가 채권 회수를 위해 이 집을 법원경매에 부치게 됐다.
경매물로 나온 장충동 집은 재벌 회장의 집답게 ‘거물’이었다. 장충동 1가 104번지와 52번지 24호, 두 필지에 걸쳐 대지 규모만 4백62평. 이 땅들은 번지수만 다를 뿐 실제로는 붙어 있다. 104번지에는 연건평 1백82평의 지상 2층, 지하 1층짜리 주택 한 채와 부속건물, 수위실 등이 세워져 있다. 최 회장과 부인 장은영씨가 살고 있는 이 주택은 방 9개와 욕실 6개를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52번지 24호의 경우 연건평 1백23평의 지하 2층짜리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 1층은 약 1백8평, 지하 2층은 15평 규모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104번지 지하 1층과 52번지 24호 지하 1층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특히 52번지 24호 지하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두 필지로 이뤄진 최 회장의 장충동 집은 지난 9월 법원 경매를 통해 건설업체인 신안도시개발(주)에 팔렸다. 낙찰가는 55억7천만원. 최저입찰가(감정가 48억1천4백27만원)보다 7억5천5백만원이나 비싸게 낙찰된 것이다.
당시 신안측은 “소유권 이전이 끝나는 대로 고급 빌라를 신축해 내년에 분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남달리 장충동 집에 애착이 강했던 최 회장도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신안측의 계획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최 회장의 둘째 아들 은혁씨(25)가 지난 10월8일 “경매 절차에 이의가 있다”며 서울지법 본원 항고부에 항고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최 회장측에서 장충동 집을 지키기 위해 ‘히든 카드’를 던진 셈이다.
▲ 지난 5월 딸 유정씨의 결혼식에 참석한 최원석 회장 부부. | ||
최 회장 소유의 104번지 및 52번지 24호와 은혁씨가 소유하고 있는 52번지 5호는 서로 붙어 있는 땅일 뿐만 아니라 건물 또한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104번지 주택 관리에 필요한 냉난방설비와 동력 설비 등이 바로 은혁씨 소유 52번지 5호에 설치돼 있다고 한다. 은혁씨 소유 건물 지하에는 헬스장, 욕실 2개, 샤워장 등과 기계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혁씨가 제기한 항고 내용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된다. 항고장에 따르면 우선 법원에서 부동산의 위치와 현황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이 사건 경매 절차에서 항고인(은혁씨)의 권리가 배제됐다는 것. 다시 말해 경매 목적 건물(최 회장 소유의 104번지와 52번지 24호 건물) 가운데 일부가 항고인인 은혁씨 땅에 ‘침범’한 부분이 있는데도 법원에서 이를 간과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최 회장 소유의 경매 부동산과 은혁씨 소유 부동산의 대지 경계가 불확실한 상태인데도 법원에서 제대로 측량하지 않았다고 은혁씨는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은혁씨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52번지 5호 건물을 출입하기 위해선 최 회장 소유의 땅과 건물을 지나가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평가가 없었으며, 최 회장 땅에 심어진 정원수와 수석 그리고 정원석 등도 최 회장으로부터 양도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지상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 회장 집 정원에는 왕벚나무 세 그루와 목백합 두 그루를 포함해 양매실, 등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정원수가 심어져 있다. 또한 해석(海石)과 골동품 수반석 등 갖가지 수석과 정원석 등이 장식돼 있다.
서울지법에서는 현재 은혁씨의 항고장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법 관계자는 “법원에선 별도의 재판 없이 항고 기록만 검토한 후 판결을 내릴 것이며, 판결시기는 올해 12월이나 내년 1월 초쯤”이라며 “재판부에 의해 항고가 받아들여질 경우 별도의 재판이 열려 상당기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 회장측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쪽은 물론 낙찰자인 신안도시개발. 신안측 관계자는 “장충동 집터에 고급 빌라를 지어 내년에 분양하려고 이미 설계도면 제작에 돌입한 상태”라며 “그런데 최 회장측에서 이의신청을 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법원에서 이번 항고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두고 본 다음 법적 대응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은혁씨가 항고장을 제출한 것에 대해 최 회장측이 ‘시간 벌기 작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이 항고를 받아들일 경우 길게는 1년 이상 송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보다 구체적인 ‘장충동 집 되찾기’ 전략을 짤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재판부가 은혁씨의 항고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