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파’의 활동무대였다는 파주 ‘용주골’의 거리 모습.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언론은 “스포츠파 사건 이후 용주골 윤락가가 암흑가로 변했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경찰은 ‘조폭이라 이름하기도 어려운 실체 없는 조직’이라고 말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라면 스포츠파의 활동 영역은 주로 용주골 윤락가.
99년 살인사건으로 스포츠파 일당을 수사했던 마포경찰서의 한 형사는 “일당 중에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을 관리해주며 돈을 받는 사람도 있다. 용주골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용주골의 패권을 쥐고 있는 조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스포츠파는 고양시 원당 지역 개발 당시 세 확장을 위해 전라도에서 올라온 폭력배들과 일전을 치르기도 했으며 이 패싸움으로 97~98년 무렵 조직원들이 감옥에 가기도 했다. 하지만 파주 내에서도 그 세력은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주경찰서 강력반 형사는 “90년대 초에 스포츠파라는 조폭이 있었는데 지금 언론에 나오는 스포츠파와는 계보를 달리하는 조직”이라며 “그냥 동네 불량배 몇이서 함께 몰려다니는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포츠파라는 이름도 파주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것. 한 형사는 “예전에 패싸움이 나서 검거했는데 머리 스타일이 모두 스포츠형이어서 담당 형사가 그렇게 붙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서의 강력반 형사는 스포츠파의 원 계보가 ‘성훈이파’라는 조직에서 기인했다고 말한다. ‘성훈’이라는 이름의 폭력배가 만든 조직에서 두목이 떠난 뒤 박광민(가명)이 조직을 물려받았고 이를 신강인(가명)이 빼앗기 위해 박광민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 형사는 “박광민은 성격이 다혈질이고 아주 직선적이었던 데 비해 신강인은 비교적 합리적으로 머리를 쓰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스포츠파는 경찰의 관리대상 조직폭력배 리스트에 97년부터 줄곧 올라 있다가 2001년에 관리대상 조직에서 빠졌다. 경찰이 파악한 스포츠파의 구성원은 10명이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