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지난 99년 11월29일 대검 중수부에 출두하는 박 시언 전 신동아 부회장. | ||
현재 미국 LA에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고 있는 박씨는 최근 <일요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특검 수사가 시작된 뒤 대통령 측근 인사가 ‘특검기간중 해외에 나가 있다 돌아오면 기업체 사장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며 회유했다”고 당시 비화를 털어놨다.
만약 박씨의 이 같은 얘기가 사실이라면 특검기간 중에도 권력 일각에서 옷로비 사건에 얽힌 진상 은폐를 시도한 것이 돼 또 다른 파문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박씨와의 전화인터뷰는 지난 6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옷로비 의혹사건은 지난 98년 외화밀반출혐의로 수사받고 있던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고관대작 부인들에게 옷을 선물하며 구명로비를 벌이던 와중에 불거진 사건. 당시 박시언씨는 신동아그룹 부회장으로 관계 요로에 다니며 최 회장 구명을 호소하고 다니던 상황이었다.
99년 2월 말 박씨는 최 회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문의하기 위해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을 찾아가는데 이때 ‘사직동팀 보고서 유출 사건’의 불씨가 점화된다. 김 총장이 박주선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현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받은 옷로비 사건 관련 사직동팀 내사보고서를 박시언씨에게 유출한 것.
박씨는 이 문건을 그해 10월에 시작된 옷로비 의혹사건 특별검사 수사 기간중에 공개했다. 결국 김태정 총장과 박주선 비서관은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그리고 미국 시민권자인 박씨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출국금지를 당해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박씨는 2000년 7월에야 출금금지조치가 해제돼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박씨는 옷로비 사건 특검 수사가 한창 진행될 당시 서울의 호텔에서 대통령 측근인 한 인사를 만났다고 밝혔다. 이 무렵은 박씨가 사직동팀 보고서를 공개하기 이전. 당시 그 인사는 이 보고서를 염두에 두고 “왜 신동아그룹을 위해 자기 손해볼 일을 하느냐”며 “어제 윗분을 만나고 왔으니 특검 기간 동안만 외국에 나가 있어라”고 종용했다는 것.
다음은 박씨와의 일문일답.
─ 문건 공개 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나.
▲ 99년 옷로비 사건 특별검사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대통령 측근인 한 인사가 ‘특검 기간 동안 해외로 나갔다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나한테 주택공사에서 발주하는 회사인 H주택 대표이사 자리를 줄 테니 (해외로) 나갔다가, 특검이 끝나는 12월18일 이후에 다시 들어오라는 거였다.
당시 그 인사는 주택공사에서 일년에 발주하는 공사액이 4조원 정도인데, 나한테만 1조5천억원씩 3년간을 보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저녁에 윗분을 만났다’고 얘기했다. ‘그러니 제발 나갔다 오라’고 했다.
|
||
| ▲ 김태정 전 검찰총장(왼쪽), 박주선 전 비서관 | ||
▲ 실명을 밝힐 수는 없다. 다만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미국에 왔을 때 나를 소개시켜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갔는데 나하고도 친했다. 지금은 한 국영기업체 임원을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실명을 말할 수 없다.
─ 그 인사와 만났던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 이 무렵 옷 로비 사건 특검이 한창 진행중이었고, 내가 사직동팀 내사 문건을 공개하기 전이었다(옷 로비 의혹사건 특검은 99년 10월8일 시작됐고, 박시언씨가 사직동팀 보고서를 공개했던 것은 11월26일이었다).
하루는 그 인사가 아침 7시에 올림피아드호텔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당시 그 사람은 ‘박 회장(박시언씨), 좋은 길이 있는데 왜 그렇게 하는가. 신동아는 이미 잘못됐는데 박 회장이 언제부터 신동아하고 그렇게 가까웠다고 신동아를 위해 자기 손해보는 일을 하려고 하느냐.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으니까, 나갔다가 18일쯤 들어오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제 저녁에 대통령을 만났다’고 하더라.
그 인사는 대통령을 자주 만나고 박주선씨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윗분한테 다시 가서 말하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구속된 최 회장이 풀려나는 것이고, 신동아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회장이 구속됐는데 그 아래 부회장이 이 정권에서 수혜를 받는다면 어디 사람이겠느냐고 했다.
─ 왜 당신한테 외국에 나가라고 했다고 보나.
▲ 당연히 내가 문서를 공개하면 더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특검 기간 동안 한국에 없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 그 인사는 당신이 문건을 입수한 것을 어떻게 알았나.
▲ 당시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권력층에 있는 상당수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만나자고 한 적도 있다. 그 사람들은 나한테 ‘더 떠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더라. 문건을 공개하기 전이었다. 공개하기 전에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박씨는 “앞으로 한국에 올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당시 자식 둘이 (LA에서) 약혼식을 했는데 출국금지되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며 아직 ‘옷로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인상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