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개시장인 성남 모란시장.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은 축 늘어져 활동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제 운명을 이미 짐작하고 체념한 듯 보였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몇 년 전부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한 노 수의사의 양심선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대도시에서 개업한 이 수의사는 죽은 개와 고양이의 사체를 관(3.75㎏)당 5000원에 보신탕 음식점에 넘겼다고 한다. 그는 글에서 “환축(병든 가축)들은 오랜 기간 동안 온갖 종류의 항생물질로 치료했던 터라 바로 ‘독약’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이런 음식을 보양식으로 먹었으니 사람은 암에 걸리고 고혈압, 중풍에 걸리고 당뇨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요즘에도 동물병원의 환축과 연구소의 실험동물 사체가 음식점으로 갈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몇 년 전 동두천으로 잠입조사를 나갔을 때, 한 동물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동물 사체를 보신탕 음식점에 넘기는 것을 적발한 적이 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다. 또 다른 관계자는 “동물 사체는 법상 의료폐기물로 분류된다”며 “실험동물이 죽고 나면, 처리 비용이 1㎏ 당 5000원으로 꽤 고가다. 개가 무게가 꽤 나가지 않나.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본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 관계자에 의하면 연천에 위치한 한 동물병원이 유기견 위탁보호소를 7년간 운영하면서, 유기견을 식용 개농장에 입양 보낸 황당한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덩치가 큰 개의 경우 안락사 처리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개농장으로 입양보낸 것”이라며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결국 해당 병원은 경기도청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다”고 들려줬다.
식용 개고기는 동물병원과 연구소 등을 통한 불법 유통 외에도, 개 농장, 실종견 및 유기견 사냥꾼, 퍼피밀(Puppy Mill, 개 번식공장) 등을 거쳐 우리 식탁으로 올라온다. 개농장과 퍼피밀의 개들은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로 배고픔과 갈증, 불편함, 고통과 질병 속에서 사육되고 있다. 이들은 제 눈앞에서 다른 개가 도살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현행 축산물위생관리법엔 개·고양이의 도축 및 식용에 관한 규정이 빠져 있다. 개 도축을 합법화할 경우 타 국가로부터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 정부가 불법도, 합법도 아닌 사각지대에 식용 개 산업을 수십 년 동안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는 개농장의 환경은 극히 비위생적이다. 개들은 좁은 우리에 갇혀 있고 배설물은 그대로 쌓여 있다. 사료는 음식물 쓰레기에 도살된 개의 부산물을 갈아서 섞어 만든다. 여기에 다량의 항생제와 성장 촉진 호르몬제도 첨가한다. 개농장을 오래 경영한 농장주일수록 항생제와 호르몬제의 비율을 잘 맞춘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밀집 사육을 하기 때문에 항상 전염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항생제 투여는 필수다. 이렇게 키워진 개들은 12~16개월이 되면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동물보호활동가 자넷 씨(가명)는 개 도살에 대해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목을 매달거나, 때리는 방법 등으로 도축한다”며 “도살장의 개들을 구조하고 보면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병에 걸리지 않은 개가 없을 정도”라고 호소했다.
개 농장이 식용 개를 판매하기 위해 개를 사육하는 곳이라면, 퍼피밀은 애견 판매를 목적으로 순혈종의 개를 대량으로 번식시키는 곳이다. 그곳의 개들은 배란촉진제를 맞고 임신이 가능한 기간 동안 끊임없이 새끼를 낳는 ‘기계’가 된다. 퍼피밀에서 태어난 개들은 전국의 애완용 동물가게로 팔려나간다. 퍼피밀에서 새끼를 낳다가 늙거나 병든 개들은 식용으로 유통되기도 한다. 퍼피밀은 도시의 가정집, 일반 건물, 시골 등 입지가 다양하고 노출이 안 되는 은밀한 곳에 위치해 있어 파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퍼피밀에서 개들이 생산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동물보호활동가들은 개가 태어나고 자라는 전체 시설을 볼 수 있고, 어미 개가 새끼와 함께 있는 곳에서만 개를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개를 사지 말고 유기견을 입양하라고 권유한다. 개를 구매하는 행위는 비인도적인 퍼피밀 산업의 충실한 구매자가 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10년째 개 식용 실태를 잠입 조사하며 식용 개 반대 캠페인을 벌여온 미국 국적 동물보호활동가 AJ씨(가명)는 “한국은 동물보호문화의 역사가 아직 짧다. 동물보호 등에 관한 본격적인 관심이 생긴 것은 10여 년 남짓 된 것 같다. 유럽은 120년, 미국은 90년에 달하는 동물 보호 및 복지의 역사를 갖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중국 동남아 한국에만 개 식용문화가 존재한다. 계속적인 캠페인 등을 통해 식용문화를 근절하고, 동물 복지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