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그룹 형제 간 계열분리설이 돌고 있다. 사진은 최근 LIG손해보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구자준 상임고문(가운데). 연합뉴스
LIG그룹은 지난 1999년 정부의 ‘5대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따라,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의 둘째 동생인 고 구철회 회장 일가가 LG화재(현 LIG손해보험)로 분가하면서 시작된 기업집단이다. 이런 역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LIG그룹에서의 LIG손보는 절대적이다. 연 매출 8조 원 이상을 기록하며 그룹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도맡고 있는 회사가 LIG손보이기도 하다.
고 구철회 회장은 4남을 뒀지만, 차남인 구자성 전 LG건설(현 GS건설) 사장은 LIG의 분가 전인 지난 1995년 이미 세상을 떠났다. 분가 후 그룹은 장남인 구자원 회장이, 그룹의 핵심 회사인 LIG손보는 삼남인 구자훈과 막내인 구자준 회장이 이끌어 왔다. 특히 구자준 회장은 계열분리 시점부터 죽 LIG손보 한 곳에서만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대표이사를 맡아 오며 회사를 키워 왔기에 이 회사에 대한 애착이 그 어떤 형제들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 5월 30일 구자준 회장이 자신이 갖고 있던 LIG손보 주식의 절반가량을 구본엽·본욱 등 6명이 보유한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LIG에이디피 주식 전량과 교환하면서 그룹 내 위상 변화가 본격 감지됐다. 이 주식 교환으로 구 회장은 LIG에이디피 지분율을 19.39%까지 크게 늘리며 이 회사 최대주주 자리가 되긴 했지만, 이 회사는 LIG손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작은 규모(지난해 매출 229억 원)인 데다 적자(지난해 순손실 201억 원)였다.
당시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구자원 그룹 회장의 직계를 중심으로 한 3세들로의 세대교체 설에서부터 구자원 회장과의 갈등설까지 흘러 나왔다. 이 주식 교환으로 구자원 회장의 차남인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형인 구본상(7.14%) LIG넥스원 부회장에 이어 이 회사 2대 주주(3.60%) 자리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구자준 회장은 이 같은 아리송한 지분 교환이 있은 지 불과 보름 만에 LIG손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다. 지난 6월 14일 LIG손보는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신임 대표이사에 김병헌 사장을, 이사회 의장직은 구자준 회장과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김우진 부회장에게 새로 맡겼다. 구자준 회장은 명예직인 상임고문을 맡으며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났다. 또 고 구자성 사장의 장남 구본욱 상무가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되며 3세로의 세대교체설에 힘을 보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구자준 회장과 조카들 간 주식 교환이 있기 전부터 구 회장과 함께 오랫동안 공동대표를 맡아 온 전문경영인 김우진 전 부회장이 복귀하고 구 회장이 고문으로 갈 것이란 얘기가 있었다”며 “주식 교환 전부터 구자준 회장은 큰형인 구자원 회장과의 담판을 통해 자신의 몫을 보장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자준 회장은 이달 초 그의 아들인 구동범 씨를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하면서 경영권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최대주주 등극에 이어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회사의 중책을 맡기며 회사 경영권 및 지배구조에 빠른 변화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 허광호 대표이사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이번에 영입된 구 부사장이 차기 대표이사를 맡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구자준 회장이 특수관계인인 방계 손자 6인이 갖고 있는 지분(총 6%)에 대한 추가 매입에도 나설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구준모, 구연주 씨 등 6인은 LIG에이디피 지분을 각 1%씩 보유 중이다. 구 회장이 독자세력화를 가속화하는 셈이다.
더불어 구 회장은 큰형인 구자원 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몫으로 LIG에이디피 외에 휴세코라는 이름의 그룹 내 시설 관리 업체를 떼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원 회장이 막내 동생인 구자준 회장에게 LIG손보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이 두 회사를 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 나아가 구자원 그룹 회장은 구자준 회장의 주식 교환 직후부터, 오는 10월 1일자로 이 두 회사를 별도 계열로 분리할 지를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5년 LIG그룹으로 편입된 휴세코는 경비, 청소, 급식, 식당 등 시설 유지관리 및 서비스업체로,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다. 지난해 매출 739억 원 중 433억 원(59%)을 LIG손해보험, LIG넥스원, LIG건설 등 계열사들이 해결해 줬다. 지난 2011년에도 49%는 계열사들 몫이었다.
하지만 LIG그룹 측은 오너 일가 구속이라는 총체적 난국이기 때문에 계열분리 자체를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LIG그룹 관계자는 “오늘(9월 13일) 선고에 따라 구 회장이 법정구속되면서 그룹 전체가 큰 난관에 부딪힌 데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당황스럽고 침통한 상황이라 계열분리를 검토할 상황 자체가 아니다”며 “또 곧 명절도 있고 한데 10월 1일자에 계열분리를 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