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좋게 나온다면 우리 증시의 움직임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
최근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 특징은 프로그램 비차익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차익프로그램매매가 현·선물 가격 차이를 이용한 위험회피(헤지·Hedge) 전략이라면, 비차익프로그램매매는 시장이 오르고 내리는 방향에 대한 베팅이다. 지난 8월부터 외국인들은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두루 바구니에 담고 있다. 조병헌 동양증권 연구원은 “비차익프로그램 매수세와 함께 외국인 매수세가 늘어난 것은 이들이 인덱스(지수) 차원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큰손들은 투자원칙이 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의 비중을 냉정하게 따진다는 것. 지난 5월 미국의 QE 축소 방침으로 일부 신흥국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큰손들이 투자목록에서 이들 신흥국 비중을 줄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신흥국 간 비중 자체를 조정하지 않는다면 위험한 신흥국에서 뺀 돈을 건강한 신흥국에 넣을 수 있다. 최근 몇 달 새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했고 이 자금은 한국으로 유입됐다. 위험한 일부 신흥국에서의 자금이탈 여부가, 한국에 대한 외국인 추가투자 여부와 맞물린 셈이다.
# 기업이익
석 달여 만에 회복한 코스피 2000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사는 만큼이나 국내 투자자들이 팔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왜 주식을 팔고 있을까. 한마디로 더 오를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워서다. 주가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기업들의 이익이라는 것은 투자의 기본이다.
안혁 한국증권 연구원은 “이익하향 추세가 지속되고 있어 추가상승에 적극 베팅하는 것은 다소 위험이 따를 수 있다”며 “이익하향 추세가 멈추는 것을 확인한 후 추가상승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원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기관은 코스피지수가 하락한다면 버팀목 역할을 하겠지만, 외국인 순매수가 지속된다면 차익실현을 하면서 지수 상승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익개선 가능성이 높아 기관들이 팔지 않는 종목이 유망 종목이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소비재(자동차), 통신서비스 업종은 이익전망이 개선되고 있고 소재, 산업재, 금융 업종 등은 3분기에 비해 4분기 전망 하향폭이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 중국
우리 경제는 수출주도형이고, 제1의 수출국은 중국이다. 중국 경기가 살아나면 수출도 늘어난다. 올해 코스피가 다른 해외 증시만 못했던 이유도 중국의 부진 탓이 컸다. 그런데 최근 중국 경제에 긍정적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 유익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호적인 정부정책과 미국 경기회복에 따른 수출증가로 중국경제의 회복세가 완연하다. 올해도 전년 동기대비 7.6% 성장이 예상된다”며 “중국의 모멘텀이 강화되면 우리 기업이익도 개선돼 주가가 오를 수 있다. 우리는 제조업 기반이 탄탄해 선진국 경기회복 수혜가 크고, 미국 출구전략 피해도 제한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좋게 나온다면, 중국 증시 흐름이 긍정적이라면, 우리 증시의 움직임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 우리 기업들의 이익이 개선된다면, 단순히 신흥국 포트폴리오 비중 조절을 위해 무덤덤하게 주식을 사던 외국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된다. 국내 기관투자자들도 차익실현을 멈출 가능성이 높다.
최열희 언론인
현금 ‘꼭꼭’ 투자 ‘꽁꽁’
증시를 내다볼 때 유용한 또 하나의 숨은 지표가 있다. 바로 대기업들의 현금보유 현황이다. 기업들이 현금보유를 늘리면 경제상황을 어렵게 본다는 뜻이고, 현금보유를 줄이면 경제를 좋게 내다봐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뜻이 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해보면 올 6월 말 현재 10대그룹 81개 제조업 상장사의 유동자산은 252조 3191억 원이다. 2011년 6월 말 207조 185억 원이던 이 수치는 2012년 6월 말 220조 1366억 원을 거쳐 마침내 250조 원선을 넘어선 것이다. 유동자산은 1년 이내에 환금할 수 있는 것으로 현금, 예금, 일시 소유의 유가증권, 상품, 제품, 원재료, 저장품 등이 해당한다. 올 2분기 국내총투자율은 24.9%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2분기(23.9%) 이후 가장 낮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자기자본수익률(ROE)은 6.93%, 총자산수익률(ROA)는 3.5%다. 현재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2.9%대. 즉 연 2.9% 이자를 받느라, 연 3.5%의 수익기회를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자기자금일 경우 연 6.93%의 수익을 포기한 것이고, 차입금일 경우 연 3.33%의 이자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기업들이 현금만 쌓아놓고 있는 경우 외국인 등 주주들은 배당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홍기석 드림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재투자를 통한 성장으로 주가가 오를 때는 배당압력이 약하지만, 번 돈을 곳간에만 쌓아두면 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아 주주들의 배당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성향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룹별 유동자산을 보면 삼성 85조 9005억 원, 현대차 59조 2887억 원, LG 30조 8154억 원, SK 20조 1751억 원, 현대중공업 17조 3611억 원 등이다. 이밖에 두산 10조 4587억 원, GS 10조 4472억 원, 롯데 9조 431억 원, 한진 5조 7273억 원, 한화 3조 120억 원 등의 순이다.
유동자산 증가율도 꽤 좋은 투자정보인데, 이익이 늘어난 경우는 배당 가능성이 높고, 부채가 늘어난 경우에는 투자위험이 높아진 경우가 많다. 최근 2년간 그룹별 유동자산 증가율은 삼성이 42.8%, 롯데 35.3%, 한화 26.8%, 현대차 23.9%, 한진 13.4%, SK 11.8%, 현대중공업 7.6%, GS 6.9%, LG 5.4%, 두산 마이너스(-) 10.1%다.
최근 이익이 많이 늘어난 기업은 삼성, 현대자동차, SK가 대표적이다. 한진, GS, LG 등은 실적이 썩 좋지 않았고, 두산은 자금사정이 빠듯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