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우선 새누리당 의원들은 민생을 강조하며 민주당을 향해 국회로 돌아오라고 압박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의원은 “왜 민주당이 거리에 나가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라면서 “야당 의원들에게 세비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심학봉 의원 역시 “박 대통령이 밥상을 차려놨는데 야당이 나가서 장외투쟁을 길게 한다는 여론이다. 국회로 들어와 머리를 맞대고 혜안을 짜내야 하는데, 그런 측면서 못마땅해 하는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민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국회 파행을 풀기 위해선 박 대통령 결단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원식 의원은 “정부 여당에 대한 여론이 이전보다 나빠진 것 같다. 대통령이 ‘불통’이라는 목소리가 굉장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민홍철 의원도 “대통령 불통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힘 있는 사람이 조금만 양보하면 된다는 말도 많았다”고 했다. 민생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은 야당과 타협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처럼 여야와 국민 여론이 확연하게 둘로 갈라지게 된 계기는 3자 회동이 결정적이었다는 데 정치권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유성엽 민주당 의원은 “3자 회동 전까지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민주당이 강경 대응해달라는 주문이 많은 편이었다”고 지역 여론을 전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3자 회동 직후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구분이 더욱 뚜렷해진 양상을 띨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사진기자단
3자 회동을 마치고 나오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얼굴은 어두웠다.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간혹 얘기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 황 대표와는 조금 떨어진 채 굳은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며 걸었다. 3자 회동 결과가 신통치 않았음을 짐작케 하는 모습이었다. 3자 회동에서 김 대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채동욱 검찰총장 감찰 논란 등 사전에 준비한 항목들을 쏟아냈고, 박 대통령 역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고 한다.
서로의 간극만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던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회동 다음 날 설전을 주고받았다. 김 대표는 17일 오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국민 뜻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면서 “민주주의의 밤이 더 길어질 것 같다”고 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야당에서 장외투쟁을 고집하면서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맞불을 놨다. 그러자 다시 김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민생이 힘겨운 것은 무능한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다. 대통령이 오만과 독선을 고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점, 또 그 발언의 수위 등을 비춰봤을 때 회동 이전보다 여야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 여론 역시 엇갈렸다. 이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우선 3자 회동에서 논의됐던 주요 의제들에 대한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괄적 유감’ 표시를 할 것으로 점쳐졌던 국정원 사태에 대해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정원 도움 받은 바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정원 개혁안에 대해서도 김 대표가 “개혁특위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한 반면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자체 개혁안을 지켜봐 달라”고 주문했다. 채동욱 총장 건 역시 박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이 할 일을 한 것”이라며 김 대표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선 김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부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특정 계층을 겨냥해선 안 된다”며 일축했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이 3자 회동에서 말했던 것처럼 국정원 의혹과 채동욱 사태는 ‘정당한 절차’와 ‘엄정한 법집행’대로 처리하면 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 역시 측근들에게 “야당이 억지를 부리는데 우리가 그것까지 받아주면서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추석 연휴 전에 실시한 국정운영 지지율 조사에서 70%를 넘긴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불통’을 꼬집는 이들은 ‘원칙정치’가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회가 장기 표류해 민생 법안 처리 등이 지지부진하다면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박 대통령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타협 없는 정치를 고수하는 박 대통령을 가리켜 ‘독한 대통령’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추석 연휴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은 6~10%가량 빠진 양상을 보였다. 이는 채동욱 총장 사퇴, 3자 회동 등을 대하는 박 대통령 모습에 국민들이 실망을 느꼈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