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몽정기2>.
용의자의 인상착의에 대해 수사관계자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로 어딜 봐도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갸웃거렸다는 후문. 용의자는 훔친 안장을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했는데 때때로 꺼내서 가죽보호제로 윤이 나도록 닦을 만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200개의 안장을 몰래 훔치고 게다가 자택에서 보관, 관리까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여성의 속옷을 수집하는 편이 쉽지 않은가.’ 그러나 성도착증 환자들의 성향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해지는 게 아닌 듯하다. 생각보다 훨씬 세분화돼 있고 복잡한 것이 바로 ‘성도착증의 세계’다.
우선 변태 혹은 성도착증은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키려 하는 ‘노출증’, 타인의 성행위 장면이나 벗은 몸 등을 훔쳐보려 하는 ‘관음증’, 소년이나 소녀에게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소아기호증’, 신체일부나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페티시즘’, 성적 고통을 주거나 자극을 받는 것을 즐기는 ‘가학·피학증’ 등을 포괄한다. 여기서 자전거 안장 사건의 범인은 물건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으므로 페티시즘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잠재적으로 이상야릇한 변태성을 지닌 사람들은 적지 않다. 단 정상인이라면 이를 이성으로 제어하고 경계를 넘지 않을 뿐이다. 반면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성적 충동을 참아내지 못하고 성도착증에 빠진다.
일본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회사원은 “여성이 피운 담배꽁초에 집착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른바 담배꽁초 도착증이다. 담배에 립스틱 자국이 묻어있는 걸 보면, 참을 수 없는 충동이 밀려온다는 것. 그러나 역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물건에 손을 댈 수는 없는 일. 그는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30대 남성이 훔친 자전거 안장(왼쪽). 그는 “자전거 안장에 남아있는 여성의 냄새를 맡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남성에 비해 드물긴 하지만 여성에게서도 성도착증은 나타난다. <주간포스트>는 이와 관련해 차마 말할 수 없는 버릇을 지닌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실기도 했다. 한 30대 주부는 종종 길거리에 속옷을 벗어 놓고 귀가하는 비밀스런 ‘취미’가 있다고. 그는 집에 돌아온 후엔 어김없이 속옷 페티시즘 커뮤니티 게시판에 “○○빌딩 비상계단에 팬티를 벗어두었다” 등의 글을 남긴다. 벗어둔 속옷이 있는 곳으로 남자들이 향하는 모습이 상상만 해도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도착증은 남녀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그렇다면 성도착증의 진단 기준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성도착증 환자는 적어도 6개월 이상 변태적 행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돼야 한다. 또 일상생활이나 사회적 활동에 방해를 받고 있는지의 여부도 기준이 된다. 가령 AV를 보거나 유흥업소 등을 통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정상이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고, 성도착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이는 병으로 간주된다. 덧붙여 애인이나 배우자보다 폰섹스나 사이버섹스 상대에게 더 빠지는 케이스도 성도착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자전거 안장 사건도 그렇지만 페티시즘은 냄새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냄새에 의해 기억이 촉발될 수 있어서다. 마치 프루스트의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린 시절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듯이 말이다. 어쩌면 자전거 안장 사건의 범인 역시 가죽냄새와 밀접하게 연루된 감미로운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치맛속 엿보려 배수로에 ‘쏙’
▶관음증 : 2013년 6월 효고현 고베시
도로 배수로에 몸을 숨기고, 여성들의 스커트 안을 엿본 회사원(26)이 체포됐다. 그는 “다시 태어나면 도로가 되고 싶다”고 진술.
▶초등학생의 실내화 : 2010년 10월 히로시마현 후추시
경찰은 회사원 남성(30)의 집에서 초등학교 여아 실내화 200켤레를 발견하고, 그를 절도 혐의로 체포했다. 남성은 “실내화에 성적인 흥분을 느낀다”고 진술.
▶하이힐 : 2008년 10월 지바현 마쓰도시
여대생으로부터 하이힐을 빼앗은 남성(27)이 체포됐다. 그는 “냄새를 맡고 싶었다”고 진술.
▶운동복 : 2010년 1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일본체육대학 운동부실에서 운동복을 훔친 남성(24)이 체포됐다. 그는 “근육질 남성의 땀으로 흠뻑 젖은 옷에서 성적 쾌감을 느낀다”고 진술.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