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축소는) 타이밍의 문제라고 본다.”(9월 25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기구인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양적완화 정책과 관련한 말을 뒤바꿔 논란이 일고 있다. FOMC의 9월 회의(18∼19일)을 앞두고 양적완화 축소 여부에 대한 시장이 촉각이 곤두선 상황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자신했다가 틀려버린 때문이다.
김중수 총재가 내놓은 경제 관련 예측이 번번이 빗나가 논란이 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김 총재의 발언은 FOMC의 양적완화 축소 결정 여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국내 금융시장 관계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김 총재가 발언 열흘 전인 8월 22∼24일 미국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주최하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인 ‘잭슨홀 미팅’에 다녀와 발언의 신뢰도가 높았던 탓이다. 잭슨홀 미팅은 각국 중앙은행장과 경제계 저명인사들이 참여해 경제현안을 논의하는 학술회의로 미국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방향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특히 그동안 김 총재가 국제회의에서 주요 인물로 자리 잡았다고 한은 측이 자랑(?)하면서 잭슨홀 미팅에 참여하고 돌아온 김 총재의 발언에 시장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김 총재의 예상은 불과 보름 뒤 실제 FOMC가 열리자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FOMC가 양적완화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자 김 총재는 25일 경제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지난주 FOMC의 의사결정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나왔다”며 “그러나 (양적완화 축소는) 타이밍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김 총재의 상황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김 총재의 발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큰 또 다른 이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FOMC가 9월에 양적완화 축소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높았던 때문이기도 하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은 FOMC 회의 직전 “미국 국가부채 상한 연기 여부를 9월부터 논의를 해야 하는데 민주당과 공화당 간 철학이 달라 난항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서 FOMC가 9월 회의에서 양적완화 축소를 안 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본다. 오히려 10월 말에 열리는 회의에서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당시 김정식 연세대 상경대학장도 “미국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는 것은 틀림없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좋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축소 시기가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달에 축소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김 총재의 예측이 빗나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 총재는 지난 4월 정부와 여당이 강력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도 물가가 불안하다며 기준금리를 동결시켰다. 당시 김 총재는 “소비자물가가 낮아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인플레이션 심리는 3%를 넘고 있다”며 “(물가가) 하반기로 가면 3%대 초중반은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 전경.
금융업계 관계자는 “한은에게 있어 물가는 가장 큰 존재 이유다. 물가가 너무 높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낮게 유지되면서 경기침체를 보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디플레이션이라는 것은 상식”이라며 “그런데 이러한 물가 상승률이 3%대가 될지, 1%대가 될지 짐작조차 못한다면 한은의 정책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해에는 경제 전망이 엇나가면서 기준금리 인하시기를 실기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김 총재는 지난해 경제를 전망하면서 ‘상저하고(상반기에는 낮고 하반기에는 높은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다. 이에 따라 한은은 지난해 7월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정하는 등 3%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경기가 급격히 식어가면서 ‘상저하추(상반기에 낮고, 하반기에 더 낮아지는 성장률)’가 현실화되자 10월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무려 0.6%포인트나 낮췄다. 그러나 지난해 성장률은 한은 전망치보다 더 떨어진 2.0%로 간신히 2%대에 턱걸이를 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