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꽃보다 할배> 출연자 중 가장 연장자인 이순재.
사실 드라마 속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황혼 배우들이 같은 드라마에 캐스팅되는 경우는 드물다. 동시기에 활동했지만 나이나 캐릭터가 겹쳐 함께 출연한 적도 거의 없다. 게다가 그들의 몸값은 웬만한 유명 배우 못지않다. 회당 1000만 원 이상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신구는 “드라마를 함께해야 얼굴을 맞댈 수 있지 따로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도 워낙 오래 얼굴을 본 사이라 서로에게 특별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대중이 바라볼 때는 그저 ‘나이든 배우’로 보일지 몰라도 70대 배우들과 60대 배우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그 중 맏형은 단연 1935년생인 이순재다. 이순재는 <꽃보다 할배> 방송 이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차기 멤버로 최불암 송재호 양택조 변희봉의 이름을 언급했다. 네 배우 모두 70대에 접어들었다. 주현과 노주현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직 70세가 안 됐다”며 선을 그었다.
주현, 노주현
김수미는 “어떤 현장에 가도 제일 연장자였는데 이곳에서는 막내가 됐다. 때문에 오라버니와 언니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에 따라 순순히 서열이 정리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은 황혼기에 접어들어 젊은 배우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줬지만 과거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들의 자존심 싸움은 상상 이상일 때가 많다.
평균 나이 60세가 넘은 황혼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던 한 영화의 경우 현장 스태프가 그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만들기 위해 여간 고생한 게 아니다. 몇몇 배우들은 젊은 시절부터 톱스타로 활동했으나 또 다른 배우는 젊은 시절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나이가 든 후 뒤늦게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김수미
같은 드라마에 출연한 황혼 배우들 간 기 싸움 역시 대단하다. 한 드라마에서 가족으로 나왔던 ‘국민 아버지’라 불리는 배우 D는 드라마가 끝난 뒤 ‘국민 어머니’라 불리는 배우 E의 험담을 자주 늘어놓았다. E가 유독 대본을 외워오지 않아 NG를 자주 냈기 때문이다. 평소 이미지와 달리 게으른 편인 E는 현장에서 급히 대본을 외우다가 D에게 핀잔을 받곤 했다.
이 드라마의 관계자는 “D가 누군가를 그렇게 비난하는 건 처음 봤다. 연예계의 원로 격인 E에게 누구 하나 입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배인 D가 더 E를 나무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분명 절친은 존재한다. 1939년생인 전원주는 2009년 타계한 동갑내기 고(故) 여운계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보다 여섯 살 어린 선우용여 역시 함께 어울려 다니곤 했다. 특히 전원주는 여운계와 함께 억대 다단계 사기를 당할 정도로 서로 모든 것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황혼 배우들의 자존심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주인공을 맡은 젊은 배우가 드라마 리허설에 대역 배우를 쓰자 대표적인 황혼 배우 가운데 한 명인 F가 화를 내며 촬영장을 떠났던 건 지금도 방송가에서 회자되는 일대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