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방송에 따르면 ‘불리한 날들’에는 지자기의 영향으로 고혈압을 비롯한 순환기 질병 환자들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혈압주의보’가 내려진 날짜 가운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일인 12월19일도 포함돼 있어 미묘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무엇을 근거로 이날 ‘고혈압주의보’를 발령한 것일까. 과연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주의보를 내보낸 또 다른 곡절이 있는 걸까. 먼저 지난 1일 북한 조선중앙TV의 방송 내용을 보자.
“12월에 예견되는 지구물리학적 요인에 따라서 불리한 날들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일, 4~5일 사이, 8~9일 사이, 11일, 14일, 19일, 23일, 27일, 30일입니다. 이런 날에는 태양 흑점의 폭발로 인한 지자기 폭풍이 정신활동이나 발병률에 영향을 미칩니다. 고혈압, 협심증, 심장기능부전을 비롯한 순환기 질병환자들이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지자기의 변화가 큰 위의 ‘불리한 날’에는 순환기 질병환자들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건강예보’이자 ‘고혈압 주의보’인 셈이다. 실제로 북한 과학자들은 “지자기 교란이 심할 때 심장병 환자들은 고통을 받으며, 심한 경우에는 생명도 위협당한다”고 경고한다.
▲ 태양흑점 폭발 상상도 | ||
북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들은 지자기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고혈압이나 심장혈관 계통이 나쁘거나 허약한 사람들은 지자기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수도 있다는 것. 북한 과학자들은 지자기 날에는 가급적 가정에서 지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술을 절제하고, 물을 의식적으로 자주 마시는 것도 지자기 날을 대처하는 요령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건강예보’의 신빙성에 대해 상당수 국내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자기가 실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가 없다는 것. 이런 데이터나 근거는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다는 얘기다.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연구소 표유선 연구사는 “전세계적으로도 ‘지자기 건강예보’를 하는 나라는 북한뿐이다”며 “무엇을 근거로 건강예보를 하는지 알려진 게 없다”고 말했다. 표 연구사는 또 “태양활동으로 생기는 지구자기장은 평균 3만nT(나노 테슬라, 자장측정단위) 정도인데, 미래에 벌어질 태양활동을 테마로 삼아 미리 한 달 동안의 건강예보를 하는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심장센터 강진호 교수도 이와 관련해 “지자기가 순환기 질환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학술논문은 없으며, 학계에도 보고된 바 없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또 “혈액에 철(Fe) 성분이 있어 (지자기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상관관계를 밝히지는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번 ‘고혈압 주의보’에 대해 ‘색깔’ 있는 시각을 지닌 이들도 있다. 북측에서 고혈압 증세가 많이 나타나는 노령층의 투표 의욕을 떨어뜨리기 위해 대선 일자를 겨냥해 ‘건강예보’를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노령층이 대부분 보수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의혹인 셈.
하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건강예보일 중 하루와 대선 일자(19일)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할 뿐”이라며 “지나친 확대해석은 금물”이라고 반박한다. 한 북한 전문 언론인은 “북측의 건강예보가 특별히 대선을 겨냥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태양 활동의 활성화가 자기 폭풍이나 전파 교란 등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인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에 따라 매달 말이나 월초에 한 달간의 건강예보를 내보내고 있다”며 “건강 주의보가 발령된 날 중 하루와 대선 날짜가 겹친다고 해서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오비이락(烏飛梨落)에 불과하다는 얘기.
하지만 대선 투표 당일 북측에서 발령한 ‘고혈압주의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또 하나의 고혈압주의보가 국내에서도 내려질 법하다. 여러 명의 후보 가운데 승자는 단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