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내부에서도 ‘서청원 대항마’로 손학규 고문이 출마해 빅매치가 성사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지난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 당시 모습. 사진제공=손학규
예상보다 재·보선에 해당하는 지역구 숫자가 적어짐에 따라 쓸쓸한 미니 게임으로 전락할 뻔했던 이번 재·보선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화성갑에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공천하고 손학규 고문의 합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흥행몰이에 나서고 있는 상황. 묘한 시기 손학규 상임고문의 등장으로 여야 지도부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해 보인다. 우선 민주당 내부에서는 손학규 상임고문의 활용론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언제나 반복되는 사안이지만, 이번 공천을 두고 민주당 내 친노와 비노 진영 간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정세균 의원을 비롯한 친노 진영에서는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이기도 한 오일용 화성갑 지역위원장을 밀고 있지만, 비노 진영에서는 손학규 상임고문의 출마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상대편에서 서청원이라고 하는 거물급 인사가 나오게 됨에 따라 당내에서도 손학규 차출론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당직자는 “아마도 이 사안은 당 지도부 회의에서 논의 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손학규 고문의 경우 지난 2011년 재·보선 분당 출마 때 주변 인사들과 숙고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주변 인사들도 많이 떠난 상황이다. 아마도 당 지도부의 결정과 김한길 대표가 직접 손을 내밀 경우 출마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지난번 분당 출마에서도 알 수 있듯 손학규 고문은 어려운 싸움 피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서도 손학규 고문은 버릴 수 없는 카드로 여겨진다. 민주당 내 비주류 진영 인사는 “어찌됐건 손학규 고문은 대선을 바라보는 거물급 인사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KS(경기고-서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이라는 배경, 과거 인권운동 경력에 경기지사, 당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민주당 내 몇 안 되는 엘리트 정치인”이라며 “만약 손학규 고문이 원내 진입과 함께 김한길 대표와 손을 잡는다면 지금의 민주당과는 무게감과 안정감 면에서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손학규 상임고문이 출마한다고 해도 민주당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즉 서청원 전 대표에게 좀 더 유리하다”면서도 “하지만 해볼 만한 싸움이다. 지난 총선 ‘선거의 여왕’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절대적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긴 반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한명숙 당시 대표는 결국 싸움에서 지지 않았나. 손학규 고문은 지금 딱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어려운 싸움이지만 만약 서청원을 잡는다면, 대권을 바라보는 손학규 본인에게나 민주당에게나 어마어마한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화성갑 후보로 서청원이라는 거물급 인사를 내세운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손학규 고문의 등장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 아니다. 벌써부터 새누리당 당내에서는 손학규 고문의 입후보 여부를 두고 내부적으로 계산에 들어간 상황.
여권 상황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새누리당이 손학규 고문의 입후보에 대해 겉으론 견제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출할 수는 있어도 당내에서는 내심 빅매치를 바라는 분위기다”라면서 “빅매치 자체가 불안요소를 갖고 있고 재·보선 패배는 꿈도 꾸기 싫은 대목이지만 염두에 둔 시나리오대로 손학규를 상대해 화성갑을 지켜낸다면 향후 여권의 국정 운영에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이겨야 할 선거를 이기는 것보다는 흥행이 보장된 힘겨운 싸움을 통해 명분과 실리는 모두 취하겠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손학규 고문의 재·보선 입후보 여부와 향후 정치적 행보를 숨죽여 지켜보는 또 다른 세력이 존재한다. 바로 끊임없이 연대론이 제기됐던 안철수 진영이다. 손학규 고문은 귀국 당시 ‘안철수 진영과의 연대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 어떤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지 않아 일말의 여지를 남겨놨다. 손 고문과 친분이 두터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안철수 진영에서 이탈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손학규 라인 인사들이 안철수 진영에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가능성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것.
일단 안철수 진영에선 손학규 고문의 불출마 선언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손 고문이 출마해 당선이라도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손 고문은 당연히 민주당 내 ‘입지강화 시프트’를 지속화 할 것이고 지금까지 제기됐던 연대론 자체가 깨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손학규 고문의 등장에 정치권 전체가 들썩이는 이유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